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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국내저자 > 에세이
국내저자 >

이름:강정

성별:남성

국적:아시아 > 대한민국

출생:1971년, 대한민국 부산

직업:시인

기타:추계예술대학교 문예창작과 졸업

최근작
2024년 4월 <미치고, 지치고, 홀린>

귀신

말의 회오리는 고요의 축 주변에서 모래알 하나도 선명하게 포착하지 못한다. 바람 지난 자리의 유령 발자국들. 말은 늘 마지막이길 바랐다. 2014년 여름

나쁜 취향

이 글을 쓰고 있는 현재, 시든 무엇이든 쓴다는 일이 한정식집 식탁에 잔뜩 차려진 반찬들을 소리소문 없이 비우는 무심한 호흡법과도 같다는 걸 깨닫는다. 내가 비워낸 그릇들이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들의 식탁에서 다른 반찬을 담고 올라와 있을 걸 생각하니 문득 배가 고프다. 그러나 내가 먹고 싶은 건 음식이 아니라 영원히 가질 수 없는 누군가의 마음이다.

들려주려니 말이라 했지만,

오래 팽개쳐둔 마음의 빈 구석에서 시간은 저 혼자 불똥이 된다. 뒤늦게 쫓아가는 나는 짐짓 난해한 물건이거나 심통맞게 돌아선 누군가의 싸늘한 등덜미이다. 불똥에 덴 흔적들과 함께 비로소 나는 나의 바깥에서 저 홀로 자족한다. 한없이 차가워진 마음으로 오래 식은 아궁이를 살피듯 긁어모은 불똥들이 세계와 나 사이, 깊숙이 가라앉은 시간의 구들장을 데운다. 알맞게 익었는지 살짝 엉덩이라도 디밀어보는 모든 분들아, 조금은 흉물스럽더라도 까칠한 거죽 속에서 혼자 비실비실 웃는 이 마음의 귀여움만이라도 눈치채주신다면 더할나위없겠다

콤마, 씨

내 인생의 일곱번째 책. 이 책은 오직 한 사람을 그리며 씌어졌다. 더위가 한풀 꺾이고 저녁 바람이 사뭇 스산해지기 시작하던 2008년 가을 무렵, 불현듯 다시는 시를 쓰지 못할 거라는 예감에 사로잡혔었다. 이유도 원인도 알 수 없었다. 그저 막연한 느낌에 불과했을 따름이지만, 그 느낌은 무슨 입영통지서처럼 분명하게 내 삶의 한 시절을 다가올 미래와 분리시키고 있었다. 굳이 시를 쓰지 않고 살아도 되지 않느냐고, 왜 시에 집착하느냐고 스스로를 달달 볶던 중, 기어이 한 사람이 내게서 떠나고야 말았다. 떠나보내지 않을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 몰랐던 것도 아니지만,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리고 오늘까지 나는 계속 아팠고, 그런 와중에 영원히 완치되지 않을 것 같은 가슴속 울혈들을 허공에 점자 찍듯 띄엄띄엄 이 책을 썼다. 떠나간 것에 미련을 갖거나 스스로 선택했던 일에 대해 후회해본 적이 별로 없다. 한 시절의 상처 따위 태양의 농도가 변화하고 바람의 세기와 방향이 바뀌는 대로 저절로 잊히는 걸 인지상정이라 생각하며 나름 거동 가볍게 살아온 편이니까. 어떤 무게에 매섭게 짓눌리다가도 잠깐 고개를 돌려 내다본 창가의 다른 풍경을 향해 가볍게 미소 지을 줄 아는 탄력이 곧 시의 힘이라 믿고 있었으니까. 그러나 3년 전 가을 이후로 내 안의 그 작은 창이 두텁고 어두운 베일 뒤로 숨어버린 느낌이다. 바깥이 보이지 않았고, 내부로 굽어든 시선이 불 밝혀줄 그 어떤 아름다운 그림도 내 속엔 존재하지 않았다. 그 퍽퍽한 어둠과 불안한 서성거림 끝에 나의 손을 놓아버린 한 사람에 대한 변함없는 연모와 사죄의 심정이 아니었다면 이 책은 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떠나간 누군가를 오랫동안 그리워하는 일, 그리고 그것으로 생의 다른 윤리를 모색하고 과거를 재편성하는 일이란 참 힘들고 허망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그게 아니고서는 내가 다시 나 자신을 향해 솔직하게(난 요즘 그 어떤 웃음도 진심이라 믿을 수 없다) 웃을 수 있는 방도가, 지금으로선 없다. 이건 고통과 슬픔의 문제가 아니라, 당위와 책임의 문제다. 스스로 조장한 것이든, 세상의 어떤 불합리한 조건과 편견에 휘둘려 굴절된 것이든, 시는 이 세상 안에 존재하는 다른 세상을 드러내는 일이라 여전히 믿는다. 한 사물을 깊숙이 들여다보거나 누군가의 이름을 오래 되뇌다보면 본래의 것과는 조금 다른 질감과 공명이 느껴지듯, 시는 낯익은 세계의 어느 표면에서 부지불식 드러나는 다른 세계의 징후를 때론 의도적으로, 때론 우연히 포착한다. 그럼으로써 이 세계가 숨기고 있는 모순과 불화의 양상들이 나타난다. 사람의 마음이란 얼마나 복잡다단한 기억과 인상들의 접합으로 변형되고 왜곡되던 가. 나는 시를 그 변화와 왜곡 자체를 투사해내는 ‘마음의 일’이라 생각한다. 그런 만큼 그것은 때로 본심을 거스르거나 굴절시키는 양상으로 흐르기도 한다. 의도하지 않은 말, 합리적으로 기획되지 않은 생각이 숨어 있는 행간 속에서 흐물흐물 새어나와 자기 자신조차 이물스러워지게 만드는 언어 앞에서 끝끝내 솔직해지기. 그리하여 자기 자신의 진심에게 스스로 속아 넘어가기. 씌어진 시는 모두 씌어지지 않은 마음의 모사물에 불과하다. 그러나 그 모사물에 대한 일차적 현혹이 없다 면 어떻게 사랑이 가능하고, 시가 가능하겠는가. 무언가를 향한 열기가 한창일 때, 그래서 삶이 한없이 노곤하고 감당 못하게 뜨겁기만 할 때, 시는 인간이 꿀 수 있는 가 장 치열하고 서늘한 꿈이 될 수 있다. 꿈인 만큼 그것은 일상 언어를 초과해 일상의 숨은 속을 밝힌다. 모든 시는 누군가의 마음속에서 명멸하는 세계의 빛과 어둠을 탐침하기만 할 뿐, 그 어떤 것도 증명하거나 강요하지 않는다. 단지, 하나의 영혼이 세계 속에서 빚어내게 되는 마찰과 호응과 이별과 합일과 결절에 대한 총체적 흔적으로써 어느 한순간, 외계의 돌처럼 눈에 띄게 될 뿐이다. 그 낯설고도 핏줄 당기게 하는 슬픈 환희의 현존이 아니라면 시는 영원히 무용하고 부질없는 인간의 허언에 불과하다. 모든 혼란과 광기와 슬픔 끝에 잠들었다가 마주치게 되는 세계의 깊은 속. 그 안에서 나를 찾고 세계의 비밀을 캐고 떠난 사람을 그리워하며 울고 웃다가 또 한참을 방황하는 것. 이것이 내겐 시의 정도正道이다. 반복건대, 이 책은 오로지 한 사람을 위해 씌어졌다. 모든 시는 오로지 하나의 대상을 통해 반사되거나 변형된 세계의 꼴을 세계에 다시 투사하고자 하는, 그리하여 세계 전부를 자신의 마음속에 일순간 포획하려는 욕망의 부산물이다. 그렇게 드러난 세계는 이미 알던 모습 그대로가 아니다. 깊이 들어갈수록 자꾸 오해만 낳게 되던 한 사람의 마음 앞에서 나는 나 스스로에게 놀라고, 그 모든 것에 일말의 자비도 베풀지 않는 세계의 냉엄함에 절망했다. 내게 한 사람은 곧 세계였다. 그렇게 치열하게 혼동하지 않고서야 마음의 바닥이 지구의 극지까지 내려가는 경험을 스스로에게 납득시킬 방법이 없다. 그 모든 뒤틀린 오해와 편견마저도 내가 바라본 그대로의 세계라고 인정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어쩌면 나는 내 가면에 속았던 셈이다. 이 책은 바로 그 여러 겹의 가면 뒤에서 낮게 읊조린, 내 안의 또다른 목소리들이다. 나는 그 소리가 진짜 내 목소리보다 더 진심에 가깝다고, 이제는 믿는다. 오욕칠정에 대한 사사로운 분별마저 망각한 채 가만히 들여다보고 매만지고 귀를 기울이기만 하면 되는 어떤 기별들. 그것들을 깨닫게 해준 열네 명의 동료 시인들에게 감사드린다. 그들의 시 속에서 나는 여러 번 사랑받고 또 여러 번 싸늘하게 버림받았다. 그런 점에서 그들은 내 사랑의 영원한 동조자들이다. 한없이 외로운 가운데 씌어진 글들이지만, 그 사사로운 외로움이 열네 편의 시를 거쳐 어떤 사람에게 따뜻한 꿈으로 펼쳐지기만 한다면, 적어도 내 기나긴 낮잠의 옹알이가 악몽은 아니었던 게 될 것이다. 시가 나를 떠난 게 아니라 내 미망과 집착이 시를 떠나게 한 것이라는 사실을 나는 애당초 알고 있었던 건지 모른다. 마치 그 사람에게 그랬던 것처럼. 언제나 그랬듯 예정된 미래란 없다 . 나는 아마도 미래에 대한 공포를 미리 시로 썼던 듯하다. 그러나 이제 시가 씌어진 것 바깥에서 늘 부유하는 새삼스러울 것 없는 공기 같은 거라는 사실을 짐짓 알 것 같다. 숨을 더 크게 쉬라고, 그래서 마음의 공간을 조금 더 넓혀보라고, 시는, 그리고 그 사람은 내게서 비껴가는 신호를 보낸 건지 모른다. 그렇게 조금은 넓어진 마음의 공터에서 나는 기다리기로 한다. 무언가를 기다린다는 것. 그것은 언제나 내 조급한 성정이 견뎌내기 힘든 일이었지만, 기꺼이 기다리겠다고 마음먹은 이후부터 그것은 나에게 가장 소중한 일이 되어버렸다. 그 소중한 일을 스스로 그르쳤 던 오늘까지의 내 과오를 용서받을 길 없다는 걸 잘 안다. 그래도 나는 그 일을 계속할 것이다. 끝으로 감사하고 싶은 사람들의 이름을 부르고 싶다. 남준은 화가다. 그는 그림도 그리고 밴드도 한다. 오래 알고 지낸 멋진 친구다. 그와 어떤 식으로든 같이 작업하고 싶었던 참이었는데, 남준은 멋진 사진들로 나를 도왔다. 책에 실린 사진들은 남준이 자기 방식대로 읽은 시에 대한 인상이라 해도 좋고, 전혀 다른 방향에서 마주친 우연한 만남이라 해도 좋다. 글과 사진을 같이 보면서 독서의 맥락을 스스로 아름답게 꾸며낼 줄 아는 독자가 있다면 어느 날 갑자기 그리운 사람에게 전화를 받은 것처럼 기쁜 기척이 내게로 전달될 거라 믿는다. 우연이 없다면 이 세상엔 그 어떤 아름다운 조화도 탄생하지 않는 법이니까. 그런 의미에서 책 끄트머리에 세를 놓게 된 자그마한 노래집은 그 우연의 소박한 징조이자 내실이라 여긴다. 소리에 대한 열망은 어릴 적부터 강했지만, 정작 열망이 아스라이 사라지고 나니 어떤 낯설고도 친숙한 음계 안에 유령처럼 떠 있게 되더라. 남준을 비롯, 기꺼이 도와준 음악 동료들(상훈, 백진, 세호, 종현, 대일)에게 감사한다. 무려 5년 동안 내 원고를 기다리다가 끝내 직장을 그만둔 전 문학동네 편집부 최지영씨께 특별한 감사와 사죄의 인사 전한다. 이 책은 그 5년 동안 수차례 변형된 기획의 최종 결과물이다. 스스로도 기겁할 정도로 게으르고 무심한 사람을 그토록 오래 믿고 기다려준 정성은 난생처음이다. 부디 행복하시길 바란다. 더불어 얼결에 일을 떠맡아 빛나게 책을 빚어준 후배 시인 민정에게도 감사드린다. 죄가 많다. 그걸 이제야 알았는지 요즘 고백 병에 시달리는 와중이다. 시인들아, 제발 잘 아프고 잘 싸우자. 2011년 겨울

키스

터진 입술로 되뇌던 건기의 나날들. 침묵에도 피가 고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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