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버지의 분재(盆栽)였다.
아버지는 지극정성으로 내게 물밥을 떠먹여주었다.
수령 56년,
이제 아버지가 원하는 만큼의 수형이 잡혔을까.
오늘 아침, 나의 분재에서 꽃이 피었다.
장돌림 아버지보다 튼튼한 역마 한 마리 끌고 세상을 떠도는 사이
첫 시집을 내고,
10년 만에 두 번째 시집을 내고,
하필, 또
10년 만에 세 번째 시집을 낸다.
첫눈이 하필 흰색인 까닭은 첫눈 맞는 대추를 보고 어렴풋이 짐작했지만
시집과 시집의 사이, 대체 그 10년이란 무엇인지.
봄여름가을겨울 물 밥상 차려 올린 내게 앙가슴을 열어준 풍로초 한 송이…….
10년이란 오늘 아침 눈을 뜬 꽃만 같다.
나무를 닮은 풀 한 포기 화분에 담아 10년을 살폈더니 비로소 나무가 되었다.
그 느려터진 세월의 뒤안에서 나도 나무가 되려는지 낡은 팔다리에서 싹이 돋는다.
어쨌거나 사람이라는 나무라면 다행이겠다.
아껴 먹은 햇살 몇 술 간장 종지에 담아두고 집 밖으로 나선다.
늦기 전에 바다의 숲을 한 바퀴 돌아야겠다.
길은 늘 아버지가 걸었던 그 길,
익숙한 초행이 즐겁다.
2014년 겨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