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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조온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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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3월 <시 낭독의 예술적 가치 연구>

저자의추천 작가 행사, 책 머리말, 보도자료 등에서 저자가 직접 엄선하여 추천한 도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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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현의 시들은 “슬픔이 번성한 나라”로 우리를 데려간다. 그곳은 “슬픔도 여러 취향으로 나”뉘고, 명세서를 받아 “무엇을 슬픔으로 지불했는지 알 수 있”는 곳이다.(「빛이 물드는 소리」) 슬픔을 화폐처럼 지불해야 한다니, 시인은 우리 영혼의 국적이 실은 고통과 비애로 가득한 세계에 속해 있다는 걸 누구보다 절감하고 있는 것 같다. 평화로운 일상도, 찰나의 기쁨도, 언젠가는 그 대가를 치르게 된다는 차가운 규칙을 헤아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어쩐지 그가 데려간 나라에서 나는 좀 더 머무르고 싶어진다. “관람차가 윤슬처럼 일렁거리”고(「난연」) “혼자 흔들리고 있는 그네의 등을 조용히 밀어 주”는 정경을 보며(「슬픈 토우는 고래만큼」), 그가 이토록 고통에 천착하고 우리로 하여금 비감을 일깨우는 이유는 무얼까 짐작해 본다. 시인이 새삼스레 “나는 감정을 가지고 살았다”는(「선고」), 어쩌면 너무나도 당연한 ‘선고’를 하는 이유는 우리가 감정이 있음을 자주 잊고 살기 때문이다. 누군가를 떠나보내는 일은 때로 슬픈 일이다. 누군가로부터 떠나는 일은 때로 괴로운 일이다. 눈물을 쉬이 허락하지 않는 메마른 생활 속에서, 우리는 그 진실을 너무 쉽게 잊는다. 그것이 온전한 인간으로 삶을 사는 데에 중요한 기관인 줄 모르고 편리하게 감정의 통각을 잘라 내 버린다. 그때 이기현의 시는 통점이 사라진 환부를 애써 건드리며 이렇게 말을 건다. “어쩌겠는가. 불우한 친구여”(「암순응」). 우리는 모두 슬픔의 나라에 함께 속해 있다고. 만일 이런 삶을 견디기 힘들다면, “내가 너의 슬픔까지 슬퍼하겠”노라고(「사랑의 외벽」). 시인은 “내가 사라진 세상은 여전히 말끔하고/아름다울 거”라고 말하지만(「휘슬블로어」), 글쎄, 그가 없는 세상을 떠올리면 아무런 정취도 느껴지지 않는 무감각한 풍경밖에는 그려지지 않는다. 나는 그가 시인으로서 우리 곁에 오래도록 있어 주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우리에게는 눈물이 말라비틀어진 현실을 떠나 설움과 기쁨을, 고독과 다정을 주고받으며 마음껏 슬퍼할 수 있는 나라로 데려다줄 시인이 필요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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