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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2019
  • 영화는 두 번 시작된다
    이동진 (지은이) | 위즈덤하우스 | 2019년 9월 "2019-1999, 이동진, 영화의 시간 "

    영화를 좋아하는 어떤 이들에겐 어떤 시기가 특정한 영화로 기억되기도 할 것이다.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지난해 상영을 놓친 영화 <아사코 (Asako I & II)>가 <아사코>라는 제목으로 개봉한 2019년 봄의 어느 주말. 영화를 보고 나오는 길에 이동진 평론가의 시네마톡 문서를 검색해 이동진의 언어와 함께 다시 영화를 보았다. "심리적인 재난과 물리적인 재난 너머의 바다를 이제 아사코는 혼자서 똑똑히 보아내야 한다. 그 바다가 여전히 아름다운지 확인해야 한다."(59쪽)라는 이동진다운 명료한 문장과 함께, '영화는 두 번' 시작됐다. '처음 한 번은 극장 안에서, 그다음 한 번은 극장 밖에서'. '료헤이'의 뒤를 쫓아 달려가는 '아사코'의 뒷모습을 떠올리면, 이제 어쩐지 조금 더 애틋한 기분이 든다. 영화가 멈춘 자리에서 그렇게 영화는 두 번 시작된다.

    시간을 들이지 않고 영화를 사랑하는 방법은 없다. 2019년 <기생충>부터 1999년 <벨벳 골드마인>까지, 영화평론가 이동진이 20년간 기록한 영화평론을 한 권으로 엮었다. 개봉 시점의 역순으로 배치된 영화평을 따라 읽다보면 영화와 보낸 시간이 함께 떠오른다. 214편의 영화를 다룬 208편의 평론, ‘찾아보기’에 정리한 영화명과 영화인명은 1,700여 개, 총 페이지 수 944쪽. 성실하고도 탁월한 사랑고백을 읽으며 관객 역시 그들 각자의 20년을 그들 각자의 영화관에서 회고하게 될 것이다. 그렇게 "영화가 멈춘 그 발코니의 자리에 서서 이제부터 관객은 곰곰이 생각에 잠길 것이다." (67쪽)

  • 나의 하버드 수학 시간
    정광근 (지은이) | 웅진지식하우스 | 2019년 9월 "잃어버린 수학을 찾아서"

    출간 전 이런 책이 나온다며 제목을 먼저 들었을 때, 나는 한국인의 하버드 생활을 그린 책으로 알고 '재밌겠다'는 생각을 했다. 수학을 '수학(修學, study)'으로 이해했던 것. 저자의 하버드 경험담도 들을 수 있으니 완전히 틀렸던 것은 아니지만, 책의 상당 부분이 '수학(數學, mathmatics)' 이야기로 채워져 있음을 알았을 때, 그 '재밌겠다'는 생각은 사라졌다. 아마도 많은 사람들에게 수학은 그런 이미지일 것이다. 그것은 저자가 이 책을 쓰게 된 계기이기도 하다. 우리가 수학에 재미를 잃고, 결과적으로 점수를 잃고, 수학이 인생에 아무 도움이 안 된다고 생각하게 된 까닭은 무엇일까.

    보스턴에서 입시생들을 가르치고 있는 저자는 역설적으로 그 입시 수학에서 벗어나야 함을 강조한다. 정확히 말하면 '한국식' 입시 수학이겠다. 우리는 '등호(=) 왼쪽의 계산 결과는 오른쪽이다', '숫자가 등호를 넘으면 부호가 바뀐다'와 같이 수학을 외워왔다. 등호의 의미도 모른 채 말이다. '왜'를 물으려 하지 않았고 물을 시간도 없었다. 저자는 하버드에서 수학을 배우며 그것을 더욱 절감했다. 물론 미국식 교육이 무조건 옳다는 주장은 아닐 터다. 하지만 저자의 수많은 제자들이 수학에 흥미를 갖게 되고 아이비리그에 입성하기까지 했다니, 우리는 그의 수학 공부법에 주목할 수밖에 없겠다.

  • 잔혹한 어머니의 날 1
    넬레 노이하우스 (지은이), 김진아 (옮긴이) | 북로드 | 2019년 10월 "넬레 노이하우스 '타우누스 시리즈' 신작!"

    80대 노인이 대저택에서 변사체로 발견된다. 현장에 출동한 피아 형사는 탐문 수사를 통해 노인이 개 한 마리와 홀로 살았으며, 과거엔 사별한 아내와 함께 인근 보육원에서 아이들을 입양해 키워왔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단순 고독사로 보고 수사에 임하던 피아 형사는 저택 뒤편의 개집에서 충격적인 광경을 목격한다. 아사 직전에 구출된 개 옆에 사람의 뼈가 흩어져 있었던 것. 노인의 저택에서는 점점 더 많은 인골이 발견되고, 수사 결과 시신들은 모두 5월 어머니의 날 전후에 실종된 것으로 밝혀지는데…

    독일의 작은 마을을 배경으로 보덴슈타인-피아 형사 콤비가 등장하는 '타우누스 시리즈'의 아홉 번째 작품으로, 출간 이후 9주 연속으로 독일 아마존 종합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다. 주변인들의 엇갈린 진술 속에 점차 밝혀지는 노인의 과거와 그에게 입양됐던 아이의 관점이 교차하며 전개된다. 아름다운 풍경과 평범한 사람들, 그리고 '어머니의 날' 속에서 친숙한 모습으로 변장한 채 도사리고 있는 '악'의 모습이 공포를 자아낸다. 빠른 속도감과 탄탄한 구성이 돋보이는 스릴러.

  • 사기병
    윤지회 (지은이) | 웅진지식하우스 | 2019년 9월 ""위암 4기. 나는 1년을 살았고, 지금도 살아 있다!"

    <마음을 지켜라! 뿅가맨> <엄마 아빠 결혼 이야기> 등 여러 그림책을 짓고 그린 그림책 작가이자 두 돌 아기의 엄마, 그리고 무뚝뚝한 남편의 아내 윤지회. 어느 날, 위암 4기라는 믿을 수 없는 선고를 받았다. 마음을 추스를 새도 없이 수술대에 올라 위를 거의 다 제거하는 수술을 받으며 다시 태어났다. SNS에서 큰 화제를 모은 <사기병>은 힘겨운 투병 생활 중에서도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고 싶은 마음에 펜을 들어 악착같이 기록해온 그림일기를 엮은 것이다.

    위암 선고 받았던 날부터, 난생처음 겪는 큰 고통을 어떻게든 이겨낸 봄 여름 가을 겨울, 또 다시 봄 여름의 시간이 오롯이 담겨 있다. 항암 치료의 날들 사이사이, 항암 공부로 똘똘 뭉친 가족들, 하루 중 가장 달콤한 믹스 커피 한 잔의 시간, 남편과의 수목원 데이트, 엄마와 함께한 단풍놀이 등 소중한 사람들과 일상의 이야기들이 틈틈이 채워져 있다. 살 수 없을 것 같았던 시간을 이겨낸 작가는 책을 끝맺으며 이렇게 말한다. "1년을 살았고, 지금도 살아 있다!" 작가에게 도전이자 희망이 된 <사기병>, 많은 이들에게 큰 힘이 되어줄 것이다.

10.42019
  • 주황은 고통, 파랑은 광기
    질 D. 블록, 리 차일드, 니컬러스 크리스토퍼, 마이클 코널리, 제프리 디버, 조 R. 랜스데일, 게일 레빈, 워런 무어, 데이비드 모렐, 조이스 캐롤 오츠, 토머스 플럭, S. J. 로전, 크리스틴 캐스린 러시, 조나선 샌틀로퍼, 저스틴 스콧, 세라 와인먼, 로런스 블록 (지은이), 로런스 블록 (엮은이), 이은선 (옮긴이) | 문학동네 | 2019년 9월 "명화와 소설의 만남"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을 소설로 쓴다'는 아이디어에서 탄생한 <빛 혹은 그림자>. 이 프로젝트를 주도했던 로런스 블록이 다시 한번 그림과 소설을 잇는 재미난 기획을 선보인다. 이번에는 작가가 소설의 재료가 될 예술가와 작품을 자유롭게 고르고 그로부터 받은 영감을 담아 단편을 쓰는 조건이다. 두 번째 초대를 흔쾌히 받아들인 전작 참여 작가진에 브램 스토커상을 수상한 데이비드 모렐 등의 작가가 새로 합류해 17편의 매혹적인 이야기가 태어났다.

    리 차일드는 르누아르의 '국화꽃다발'을 선택해 미술관 직원과 부유한 컬렉터 사이의 위험한 거래를 그렸고, 조이스 캐롤 오츠와 발튀스의 '아름다운 날들'의 만남은 그림 속에 갇힌 소녀의 간절한 목소리가 되었다. 로런스 블록은 미켈란젤로의 '다비드'를 소재로 뉴욕과 피렌체를 넘나들며 살인 사건의 비밀을 들춰내고, 니컬러스 크리스토퍼는 고갱의 '부채를 든 소녀'를 선정해 실제 고갱과 고흐가 함께 머물렀던 '노란 집'에 얽힌 이야기를 재해석한다. 살바도르 달리, 조지아 오키프부터 로댕과 호쿠사이에 이르기까지 다채로운 작품이 소설과 만나 새로운 이야기를 입었다. 미술과 문학을 사랑하는 이라면 빠져들 수밖에 없는 책.

  • 이제야 언니에게
    최진영 (지은이) | 창비 | 2019년 9월 "소설 Q의 선택, 최진영 장편소설"


    2008년 7월 14일. 이제야는 일기를 썼다. 끔찍한 (이 형용사에는 취소선이 있다.) 오늘을 찢어버리고 싶다. 다정하고 친절한, 동네 어른들과는 달랐던, 젊고 부유한 당숙이 제야를 성폭행했다. 제야는 침착하게 대응했지만, 그 침착함으로 인해 오히려 피해자답지 못한다고 비난을 받는다. 가해자같지 않은 가해자와 피해자답지 않은 피해자. 어린 시절부터 친하게 지내던 동생 제니와 사촌 승호와도 사건으로 인해 멀어진 채 제야는 살아남기 위해 넘어지고, 다시 일어선다. '나를 견디지 않고, 나와 잘 살아보고 싶다'고 말하는 제야의 목소리. 일기 형식으로 기록된 언어에서 거리두기가 더 쉽지 않다.

    <당신 옆을 스쳐간 그 소녀의 이름은>, <해가 지는 곳으로>의 최진영이 제야에게 귀 기울이며 함께 걷는다. 사건 이후의 삶, 계속 이어져야 마땅할 긴 여정의 길목에 켜켜이 쌓인 고통과 의지에 대해 소설은 이야기한다. 고통을 묘사할 때보다 위로를 묘사할 때 더 주저했다고 말하는 소설. "누군가 내게 상처 입힌 일에도 내 잘못부터 찾으려고" 했던 사람에게, 그럼에도 "나도 애쓰는 사람이 될 거라고" 다짐하고 싶은 이에게 함께 하기를 권하는 소설. 세상에 질문을 던지고, 경계 없는 문학을 꿈꾸며, 독자에게 달려가 함께하고 싶어하는, 창비의 새 소설 시리즈 소설Q의 첫번째 선택. 최진영이 이제야 전한다.

  • 내 아들은 조현병입니다
    론 파워스 (지은이), 정지인 (옮긴이) | 심심 | 2019년 9월 "당신이 이 책으로 인해 상처입기를 바란다"

    은희경 작가의 소설 속 문장을 빌리자면, "약점이 있는 사람은 세상을 감지하는 더듬이 하나를 더 가진다." 이 책은 조현병에 걸린 두 아이 중 한 아이를 잃고, 남은 아이의 투병을 지켜보고 있는 아버지가 예민한 촉수로 써 내려간 기록이다.

    책은 두 줄기로 흐른다. 하나는 아버지로서 쓴 가족의 이야기다. 섬세하고 창의적인 두 아이의 어린 시절 묘사부터 조현병이라는 그림자가 이 가능성 충만하던 아이들을 집어삼키는 과정까지, 가족사의 장면 장면을 담담하고도 세밀하게 그린다. 다른 하나는 이런 이야기를 삶에 품은 저자가 저널리스트로서 예민하게 모으고 연구한 조현병의 역사적, 의학적, 사회적 분석이다. 두 줄기는 교차되어 진행되며 조현병 환자와 가족의 비극적인 현실을 보여준다.

    잘 모르는 대상에 대해 함부로 말하는 일은 얼마나 쉬운지. '또라이, 미치광이, 정신병자'라는 짧은 이름으로 불렸던 존재들이 구체적인 인격을 지닌 인간임을 알아가는 과정은 곧, 우리가 그간 약자를 향해 얼마나 무신경한 폭력을 행해왔는지 깨닫는 고통스러운 시간이다. 그러나 그 고통으로 얻은 앎은 앞으로 고립된 사람들을 살리기도 할 것이다. 저자는 서문에 "여러분이 이 책으로 인해 상처 입기를 바란다"고 썼다. 이제 우리, 상처받을 때다.

  • 머시 수아레스, 기어를 바꾸다
    메그 메디나 (지은이), 이원경 (옮긴이) | 밝은미래 | 2019년 9월 "2019 뉴베리 대상 수상작"

    "지금 이대로 변하지 않을 순 없을까? 늘 그대로면 좋겠어." 이런 머시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중학생이 되자마자 주변의 모든 것이 변해간다. 얼떨결에 전학생 마이클을 돕는 임무를 맡게 되면서, 마이클을 좋아하는 친구 에드나와 마찰이 끊이지 않는다. 사랑하는 할아버지는 종종 길을 헤매거나 넘어지고, 다른 사람처럼 이상한 행동을 보인다. 학교도, 친구도, 가족도, 모든 게 꼬여가는 것만 같다.

    하지만 가장 크게 요동치는 건 바로 머시 자신이다. 어느 날은 에드나가 사라지길 바랄 만큼 미웠다가, 어느 날은 괜히 미안해지기도 한다. 이런 머시의 모습을 통해 성장기에 느끼는 여러 감정을 솔직하게 그려내는 동화책이다. 오지 않는 초대를 기다릴 때, 잘못하지 않은 일에 사과해야 할 때, 혼자만 몰랐던 비밀을 알아버렸을 때의 마음처럼, 한 단어로 정의할 수 없는 복합적이고 미묘한 감정들까지 풍부하게 묘사하고 있다.

    영원하리라 믿었던 것들도, 영원하기를 바랐던 것들도 시간이 지나면 변하기 마련이다. 또한 모든 일은 언제나 좋은 방향으로 흘러가지만은 않는다. 그런 세상 속에서 나만 제자리에 있을 수는 없다는 걸 깨닫게 된 머시는 조금 힘든 길을 마주하게 되더라도 기어를 올리고 페달을 밟아나가기로 한다. 앞으로 나아가지 않으면 기분 좋은 바람은 일지 않는다는 걸 이제는 알고 있으니까.

10.82019
  • 2019 김승옥문학상 수상작품집
    윤성희, 권여선, 편혜영, 조해진, 황정은, 최은미, 김금희 (지은이) | 문학동네 | 2019년 9월 "새로움보다 새로운 이 시대의 문학, 윤성희 대상!"

    킥보드를 타는 할머니가 넘어졌다. 윤성희는 훔친 킥보드를 타고 밤마다 아파트 단지 주변을 도는 한 여성의 이야기를 <어느 밤>이라는 소설에 담아냈다. 다 키운 딸은 미국에서 유학중이고, 남편과 말을 섞고 싶지 않아 아침밥을 함께 먹기를 피하는 노년의 여성. 폭력적인 아버지에게 시달리고, 몸을 쓰는 일을 하느라 여러 번 다치고, 시댁 동생 빚을 갚아주었던 그의 삶은 우리가 잘 알 수도 있는 이야기이겠으나 그가 흥얼거리는 노래가 무엇인지, 그가 외우는 시가 무엇인지, 거북이 스티커가 붙은 채 놀이터에 방치된 킥보드를 훔친 이유가 무엇인지를 우리는 알지 못한다. 그의 긴 인생을 담아내기엔 너무도 짧은, 호흡이 긴 문단으로 자신이 지나온 시대를 바라보는 한 여성의 이야기. 비극의 일상성을 명랑하고 수수하게 묘사하는 윤성희 소설의 힘으로 한 여성의 삶을, 구조되었어야 마땅한 그의 삶의 이야기를 '발견'한다.

    김승옥문학상이 새롭게 독자를 찾는다. 새로움보다 더 새롭게, 꾸준히 작품을 발표하며 문학을 사랑하는 독자의 서재를 풍성하게 만들어준 등단 10년 이상의 작가들이 1년간 발표한 단편소설 가운데 가장 뛰어난 7편을 뽑아 소개한다. 올 김승옥문학상 수상 작가는 윤성희, 권여선, 편혜영, 조해진, 황정은, 최은미, 김금희로, 윤성희가 <어느 밤>으로 대상을 수상했다.

  • 뇌, 욕망의 비밀을 풀다
    한스-게오르크 호이젤 (지은이), 강영옥, 김신종, 한윤진 (옮긴이) | 비즈니스북스 | 2019년 10월 "소비자의 뇌를 유혹하라!"

    오늘날 우리는 우리의 모든 행동을 뇌가 지시하고 있음을 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몇 가지 상황에서만큼은 그 사실을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 이를테면 누군가를 사랑한다거나, 화를 참아 내고 있거나, 술을 마시고도 운전대를 잡으려 할 때, 우리는 뇌가 아닌 '내'가 상황을 지배한다고 생각한다. 이 책의 핵심 주제인 '구매결정'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충분한 검토를 거쳐 합리적 소비를 하고 있다고 자신하지만, 짜장면과 짬뽕, 콜라와 사이다, 일시불과 3개월 무이자 사이의 갈등을 해결하는 건 내가 아니라 '뇌'다.

    우리가 특정 상품 앞에 속절없이 무너지는 건 그것이 그렇게 설계되었기 때문이다. 또 많은 경영자와 마케터들이 이 책을 읽고 소비자를 유혹할 것도 분명하다. 소비자는 결국 "은밀하게 소비를 부추김당하는 유혹의 희생자"다. 그렇다고 마냥 당할 수만은 없는 노릇. 우리는 뇌의 작동 원리를 알고 구매 욕구를 다스릴 수 있어야 한다. 소비를 제어하는 것이야말로 재테크의 시작이기도 하니 말이다. 생산자들이 소비자들을 더 잘 이해하는 데 목적을 둔 이 책이 소비자들 스스로에겐 훌륭한 심리서이자 재테크서가 되는 셈이다.

    이 책이 다시 소개되는 데에는 한 유튜버의 공이 컸지만 어쨌든 독자의 한 사람으로서 11년 전 놓쳤던 책을 마주하게 되어 기쁜 마음이다. 소비자를 유혹하기 위한 모든 재료와 조리법을 담은 이 책은 스스로 그 '유혹 설계'의 모범을 보여주는 듯하다. 상품을 기획하고 만들고 판매하는 사람들은 책의 목차만 보더라도 그 궁금증을 참을 수 없을 테니 말이다. 부족하지만 이 글 역시 독자들을 유혹하기 위해 준비되었다. 자, 장바구니 버튼을 누르지 않을 자신이 있는가? 다시 한 번 명심하자. 유혹당하는 건 내가 아니라 뇌라는 것을.

  • 맨해튼의 반딧불이 (양장)
    손보미 (지은이), 이보라 (그림) | 마음산책 | 2019년 9월 "<그들에게 린디합을> 손보미 짧은 소설"

    "다른 무엇보다, 도대체 누가 불행을 수집한단 말인가?" '그가 꿈꾸었던 인생'은 아니었지만, '도저히 나쁜 삶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삶을 살고 있는 남자. 한때는 시인이었지만 지금은 문학관 직원으로 일하고 있는 그에게 불행수집가를 아느냐고 전성기는 지난 연예인인 여자가 묻는다. 불행 수집가가 가져간 불행이 자신의 무엇과 교환되었는지 모르는 채 계속되는 인생. '그게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하염없이 기다리는 삶'을 우리는 알고 있다. (<불행 수집가> 中)

    손보미 짧은 소설. 고양이 도둑, 분실물 찾기의 대가, 잃어버린 7시를 찾아주는 탐정. 확고한 스타일을 지닌 소설가 손보미가 경쾌한 리듬으로 스무 편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반딧불이처럼 '어떤 순간들은 그런 식으로 퐁퐁퐁, 거리면서 부지불식간에 내 앞으로 다가오는 건지도 모른다고' 말하는, 찰나를 보는 이야기들. <디어 랄프 로렌> 속 이야기의 번외인 <고양이 도둑>, 단편소설 <임시교사>의 씨앗이 된 이야기 <허리케인> 등이 수록되어 손보미의 세계를 꾸준히 탐독해온 독자라면 더욱 즐겁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 한판 붙자, 맞춤법!
    변정수 (지은이) | 뿌리와이파리 | 2019년 9월 "맞춤법, 외 않되?"

    평소 메신저나 SNS 등에서 편한 문자 생활을 하다가 '각 잡고' 글을 쓸 일이 생기면, 가장 신경 쓰이는 것이 맞춤법이다. 틀린 글자는 없을까, 띄어쓰기는 제대로 했을까, 이런 불안이 찾아들면 슬쩍 맞춤법 검사기나 규칙을 찾아보게 된다. 그러나, 아이쿠! 이만저만 공부해서 될 일이 아닌듯싶다. 빼곡히 적힌 규범도 어려운데 규범에서 벗어난 예외들 또한 줄줄이. 머리가 아프다. 정확한 한글 맞춤법이라는 큰 산 앞에서 우리는 어느새 주눅 들어 있다.

    이 책의 목적은 독자들이 어문 규범의 압박에서 벗어나 자유로워지게 하는 데 있다. 저자는 편협한 표준어 중심주의, 완고한 규범주의에서 벗어나 "의사 전달의 효율성"과 "표현의 적절성"에 집중하자고 주장한다. 그는 규범들을 설명하며 "무조건 지켜야 돼"라고 주장하지 않고, "규범이 왜 이럴까?"를 살핀다. 소통의 본질을 되새겨보자는 의도다. 따라서 이 책은 '맞춤법을 알려주는 책'이라기보단 '맞춤법에 대한 책'이라는 설명이 더 맞겠다.

    책은 100회 넘게 진행된, 편집자 대상의 맞춤법 교육을 갈무리한 내용이다. 그러나 직업에 관계없이 누구든 충분한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우리 모두 한국어를 쓰고, 맞춤법 앞에서 주눅 들어 본 적 있으니까 말이다. 책은 말한다.
    "야! 너두 할 수 있어!"

10.112019
  • 줄리언 반스의 아주 사적인 미술 산책
    줄리언 반스 (지은이), 공진호 (옮긴이) | 다산책방 | 2019년 9월 "줄리언 반스만이 쓸 수 있는 매혹의 미술 이야기"

    맨부커상 수상 작가라는 타이틀 외에도, 뛰어난 저널리스트이자 에세이스트로 널리 알려진 줄리언 반스. 그는 소설뿐 아니라, 음악과 요리, 미술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깊이 있는 평론을 써왔다. 국내에 소개된 에세이는 <사랑은 그렇게 끝나지 않는다> <웃으면서 죽음을 이야기하는 방법> <또 이따위 레시피라니>, 최근 출간된 <줄리언 반스의 아주 사적인 미술 산책>까지 총 4권이다.

    출간 즉시 여러 언론의 극찬을 받은 <줄리언 반스의 아주 사적인 미술 산책>은 줄리언 반스에게 가장 깊은 인상을 준 귀스타브 모로 미술관에 관한 흥미로운 에피소드를 시작으로, 제리코, 들라크루아, 세잔, 드가, 호지킨 등 낭만주의부터 현대 미술을 아우르는 17편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작가만의 독창적인 시선과 소설가다운 탁월한 상상력, 문화 전반의 깊은 지식을 토대로 위대한 그림이 탄생하게 된 배경과 화가의 삶, 그리고 지극히 사적인 감상을 촘촘하게 풀어내어 읽는 동안 지루할 틈이 없다. "미술은 단순히 흥분을, 삶의 전율을 포착해 전달하는 것이 아니다. 바로 그 전율이다." 줄리언 반스에게 전율이 된 그림 컬렉션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는 매혹의 책이다.

  • 9번의 일
    김혜진 (지은이) | 한겨레출판 | 2019년 10월 "<딸에 대하여> 김혜진 신작, 당신의 노동 "

    일과 나 사이,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는 건 누구에게나 쉽지 않은 일이다. "새끼 고양이처럼 연약하고 자그마하던 회사가 지금처럼 큰 기업으로 성장했다는 데에 비밀스러운 자부심"이 있던 통신회사 현장팀 직원 '그'도 그랬다. 26년을 근속한 회사에서 저성과자로 분류된 이후, 그는 계속 하강한다. 권고사직을 권유당하고, 재교육을 받고, 동료의 눈치를 받는다. 아직 학교에 다니는 자식이 있고, 대출금이며 연금, 보험료를 내야 하는 그는 '버텨야' 한다. 해본 적이 없는 계약 업무를 받아 월급을 삭감 당하고, 타 지역 '거점 센터'로 발령이 나고, 또 지방 소도시로, 하청업체로, 변두리 소읍으로 떠밀리면서도 그는 버틴다. 일이 곧 나이기 때문에, 노동하는 인간으로만 살아온 그는 버텨내는 것 말고는 다른 방식으로 살 수 있음을 상상할 수가 없다.

    '노동을 통해 사람이 왜소해지는 과정을 날렵한 필치로 그려낸다'는 평과 함께 <싸울 때마다 투명해진다> 등의 작가 은유가 추천사를 썼다. 평온한 일상이 고요하고 참혹하게 파괴되는 과정을 소설이 응시한다. 한 인간이 '9번'으로 불릴 뿐인 세계에서 우두커니 버티고 선 모든 이의 이야기. 동성애자 딸의 삶을 바라보는, 요양보호사로 노동하는 어머니의 이야기였던 <딸에 대하여>의 작가 김혜진이 2년만에 신작 장편소설을 발표했다.

  • 진실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
    미치코 가쿠타니 (지은이), 김영선 (옮긴이) | 돌베개 | 2019년 10월 "진실이 빛을 상실한 시대"

    트럼프는 대통령으로 재직한 첫해, 하루 평균 5.9개의 거짓말을 했다. 트럼프의 보좌관들조차 그가 내뱉는 말들의 진위 여부를 확인하는 것을 포기했다고 한다. 언론사들은 사실 확인 전담팀을 채용했다. 날마다 그는 엄격, 정밀, 신뢰와 같은 가치들의 대척점으로 걸어가고 있다.

    트럼프에게 진실이 말소된 오늘날에 대한 모든 책임을 물을 수는 없을 것이다. 트럼프 이전에도 가짜 뉴스와 혐오 발언은 존재했고, 그는 거짓의 리더라기보다 어쩌면 시대의 상징에 가깝다. 다만 그는 가짜와 혐오의 세계를 주류사회로 끌고 들어왔다. 트럼프 이후, 거짓은 더이상 스스로를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거짓과 혐오는 뻔뻔함을 장착했고 대중은 자신이 듣고 본 것이 거짓인지 진실인지 알 수 없게 되었다. 이제 사람들은 각자의 진실을 취사선택한다. 이 책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진실의 죽음"인데, 전 세계에서 장송곡이 울려퍼지고 있다.

    망가진 세계를 보면서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를 자주 되뇌게 된다. 이 책은 세계가 "어쩌다 이렇게 되었는지"에 대한 분석이다. 퓰리처상 수상자인, <뉴욕타임스>의 독설 서평가 미치코 가쿠다니는 세계가 점진적으로 진실을 잃어오기까지의 과정을 역사, 문화, 사회적으로 분석한다. 포스트모더니즘으로부터 비롯된 상대주의와 미디어의 발달로 인한 삶의 형태 변화가 주요한 논점이다. 정희진 여성학자가 해제의 첫 문장에 "나는 이 책의 관점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썼듯이, 책의 어떤 지점들에 대해 갑론을박이 있을 수는 있겠다. 그건 차라리 반가운 일이다. 논쟁이 가능하다는 건 적어도 같은 토대 위에 서 있다는 말이니까. 논쟁조차 어려워진 시대 아닌가.

  • 소녀와 소년, 멋진 사람이 되는 법
    윤은주 (지은이), 이해정 (그림), 서한솔 (감수) | 사계절 | 2019년 9월 "행복하게! 당당하게! 나답게!"

    일상 속에서 마주하게 되는 여자다움, 남자다움의 구분은 옳지 않다고 말하며, 차근차근 자신의 몸과 마음, 감정까지 있는 그대로의 나를 긍정할 수 있도록 돕는 어린이 생활 안내서이다. 당연하고 자연스럽게 여겨왔던 것들에 대한 반문과 함께 "울고 싶을 땐 펑펑 울자", "싫은 기분이 들 땐 싫다고 말하자" 구체적 방법을 제시하는 것은 물론, 차별을 뛰어넘어 멋진 모습을 보여준 여성 멘토들의 이야기까지 알차게 담아냈다.

    어쩌면 이 책은 어른들이 먼저 읽어야 할 책일지도 모르겠다. 책에서는 어른들도 틀릴 때가 있다고, 어른들의 말이 이상하다고 느껴지면 "왜?"라고 물어보자고 말한다. 어린이들이 마음껏 나다움을 가꿔나갈 수 있도록, 어른들부터 갇혀있던 틀에서 벗어나 나다워지는 법을 배울 수 있기를, 그렇게 함께 만들어갈 세상에서는 모두가 평등하게 행복을 꿈꿀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10.152019
  • 가기 전에 쓰는 글들
    허수경 (지은이) | 난다 | 2019년 10월 "허수경 시인이 남긴 생의 마지막 노트"

    2018년 10월 3일 뮌스터에서 생을 마감한 故 허수경 시인의 유고집 <가기 전에 쓰는 글들>. 시인이 2011년부터 2018년까지 7년 동안 기록한 시작 메모를 시기별로 담고, 각종 문예지에 발표한 시의 모음, 시인이 제 시에 부친 작품론과 시론으로 마지막 일부를 채웠다.

    시인은 '간절한 한 사람의 시간을 붙들고 있는 것, 그 시간을 공감하는 것이 시를 쓰는 마음'이라 했고, '간절한 어느 순간이 가지는 사랑을 향한 강렬한 힘을 시를 쓰는 시간'이라 했다. 또한, '시를 쓰는 순간 그 자체가 가진 힘이 시인을 시인으로 살아가게 할 것'이라 했다. 작은 귤에서 살아오면서 맡았던 모든 향기를 떠올리며 삶은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고백하고, 다시 시를 써 내려갔던 허수경 시인. 생의 마지막까지도 간절한 마음으로 시를 놓지 않았던 시인의 모습이 스며든 문장 한 줄 한 줄이 마음을 울린다.

  • 밀크맨
    애나 번스 (지은이), 홍한별 (옮긴이) | 창비 | 2019년 10월 "2018 맨부커상 수상작!"

    독서와 달리기를 좋아하는 '나'의 일상은 '그'의 등장으로 서서히 깨어진다. 길을 걷는 나를 쫓아와 아버지를 안다며 말을 거는 한 남자. 우유를 배달하지 않지만 '밀크맨(우유배달부)'이라 불리는 그는 마을에서 독립투쟁의 주역으로 명망이 높다. 처음 봤으면서 친절한 태도로 집까지 태워주겠다는 그의 행동이 이상하고 불쾌하지만, 그가 유명한 어른이고 무례하지 않다는 사실에 머뭇거리는 '나'. 겨우겨우 이유를 만들어 거절했는데도, 이후 그는 학교와 공원을 비롯한 일상 반경에 계속 나타나 수작을 부린다. 두려움은 커져가지만 동네 사람들은 오히려 내가 그를 유혹했으며 두 사람이 그렇고 그런 사이라며 수군거린다. 소리 없는 폭력에 '나'는 점점 고립되고, 자책과 무기력 속으로 침잠하는데…

    한림원의 성 추문으로 노벨문학상 시상이 취소됐던 2018년, 애나 번스의 <밀크맨>이 '소문과 정치적 충성이 개인의 성폭력을 고발하는 운동에 어떻게 작용하는지 보여준다'는 심사평과 함께 맨부커상을 수상해 화제를 모았다. 소설 속 '나'는 친절과 애정으로 포장하고 다가오는 무례에 대해 분명 불편하다는 감정이 들지만 그것이 중요하다고 생각지 못하고, 거부할 권리가 있다는 것도 인지하지 못한다. 그저 상황을 봐서 얼른 예의바르게 자리를 뜨는 게 최선이라고 생각한다. 소설의 배경인 1970년대 북아일랜드는 남자가 요리를 좋아하거나 축구를 즐기지 않는다는 이유로 따돌림 당하던 시대, '자신의 특이한 습성이 사회적 규준에 맞지 않는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보다는 최대한 납작 엎드려 있는 것이 최선'이었던 시대, 어디서 무슨 행동을 하든 '동지냐 적이냐'는 이분법적 정치 진술로 비화되던 시대였다. 40년 전의 일들이 낯설게 느껴지지 않고 지금, 여기의 모습이 자꾸만 아른거린다.

  • 파이어족이 온다
    스콧 리킨스 (지은이), 박은지 (옮긴이) | 지식노마드 | 2019년 9월 "스스로를 해고하고 삶의 불을 지펴라!"

    은퇴는 직장인의 숙명이다. 그러니 정년까지 기다릴 이유는 없다. 그만둘 수만 있다면 그만두는 것이 좋은 게 직장 아니던가. 그렇지만 오늘도 우리는 로또 1등에 당첨되면 회사를 그만두겠다며 전제조건을 달고 있다. 그렇다, 조기 은퇴는 꿈같은 일이다. 먹고살 문제부터 해결해야 하는데 이것만큼 어려운 문제가 또 없다. 정년 이후의 20년도 벅찬데 지금 떠난다면 한 40년 정도는 스스로 책임져야 하니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결국 경제적 자유를 달성하고 조기 은퇴에 성공한 사람들을 일컫는 '파이어족'은 아직 먼 나라 이야기로만 들린다. 그래서 저자가 발 벗고 나섰다. 그는 이 책에서 가족들과 함께 파이어족으로 살게 되기까지의 과정을 하나부터 열까지 몸소 보여준다.

    파이어족을 짠내 나는 절약과 저축 그리고 일정 수준의 투자, 즉 재테크의 관점으로 이해했다면 절반만 맞은 것이다. 남은 절반은 의식과 규범의 문제다. 재무적 이슈를 해결했다고 반드시 은퇴할 필요는 없다. 그러니 파이어족에게는 조기 은퇴를 통해 나만의 삶을 살겠다는 굳은 의지가 더욱 중요하다. 이때 경제적 자유는 그 실현을 돕는 도구가 된다. 자, 이제부터는 반대로 생각해 보자. 경제적 자유를 달성하면 회사를 뛰쳐나오겠다가 아니라, 내가 진짜로 원하는 삶을 살기 위해 경제적 자유를 달성하고야 말겠다고 말이다. 그렇게 마음의 불을 지폈다면 이제 저자와 저자가 만난 파이어족 선배들의 이야기에 귀기울이고 그 지침들을 따르는 일만이 남았다. 모쪼록 건투를 빈다.

  • 쓰레기통 요정
    안녕달 (지은이) | 책읽는곰 | 2019년 10월 “소원을 들어 드려요!”

    어느 날 아침, 뒷골목 쓰레기통에서 쓰레기통 요정이 태어났다. 머리에는 커다란 장난감 보석 반지를 쓰고, 몸통은 빨주노초파남보 무지갯빛이다. 파리가 윙윙 날아다니는 군내 나는 잡동사니 속에서 쓰레기통 요정은 사람들을 향해 씩씩하고 명랑하게 외친다. "소원을 들어 드려요!"

    <쓰레기통 요정>은 안녕달 작가가 실제 버려진 종이들을 오리고 붙이고 그려 만든 첫 콜라주 그림책이다. 영수증, 서류 봉투, 과자 상자, 공책, 약봉지, 두루마리 휴지가 모여 따뜻하고 유쾌한 이야기가 만들어졌다. 손때 묻은 낡은 인형이 아이의 웃음을 찾아주고, 장난감 보석 반지가 할아버지의 소중한 선물이 된 것처럼, 세상에서 가장 보잘것없는 것들로 세상에서 가장 빛나는 행복을 그려내었다.

10.182019
  • [세트] 뭐라고? 마감하느라 안 들렸어 + 그리고 먹고살려고요 + 삶에 지칠 때 작가가 버티는 법 - 전3권
    곽재식, 도대체, 백두리 (지은이) | 알라딘 이벤트 | 2019년 10월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 버티기는 작가의 일!"

    '작가' 하면 떠올리는 이미지는 대부분 이렇지 않을까. 사색하고, 탐험하고, 늘 어딘가 우수에 젖어 있으면서, 가끔 영감이 떠오를 땐 미친 것처럼 글을 써내려가는 사람.

    도대체, 곽재식, 백두리 세 작가는 환상을 찢고 나와 외친다. "현실은 그게 아니야!" 이들은 마감이 다가오는데 소재가 떠오르지 않아 울부짖고, 원하는 작업이 아닌 생계를 위한 작업에 치여 현타가 오고, 가까운 미래도 그려지지 않아 불안해하는 일상을 여과 없이 보여준다. 도대체 작가는 말한다. "울면서 달리고 있다"고.

    '개봉열독 X', '웬일이니! 피츠제럴드 X' 시리즈로 사랑받은 은행나무, 마음산책, 북스피어 세 출판사의 합작 프로젝트가 '작가특보'로 돌아왔다. 등단 절차를 거치지 않고 시스템 밖에서 분투하다가 마침내 쓰고 그리는 삶을 살고 있는 세 명의 작가에게 작가로 사는 것에 관해 질문했고, 그 대답으로 이 책이 나왔다. 다 읽고 보니 어느새 세 작가를 응원하고 싶어진다. 팍팍한 일상을 '버틴다'는 이 작가들, 그 일상 사이사이에 묻은 글과 그림에 대한 깊은 애정을 들켰다. 장바구니에 각 작가의 책 한 권씩을 담았다.

  • 하버드 부모들은 어떻게 키웠을까
    로널드 F. 퍼거슨, 타샤 로버트슨 (지은이), 정미나 (옮긴이) | 웅진지식하우스 | 2019년 10월 "양육 공식, 가장 분석적이고 전략적인 교육법"

    ‘하버드대 학생들은 어떻게 자랐을까?’ 혹은 '무엇이 그들을 특별하게 만들었을까?'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저자들은 15년간 하버드생들을 비롯하여 큰 성공을 거둔 수백 명의 성장 과정을 인터뷰하고 이를 분석하는 '하버드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그 결과 부모로서 자녀의 성공을 돕는 공식이 존재하는데, 이 성공의 공식은 부모의 학력이나 지위, 경제력과는 무관하며 부모의 전략적 선택에 따라 좌우된다는 것이다.

    가정마다 상황이 다르고 자녀들의 관심사나 재능이 달라서 겉으로는 유사점이 없어 보이지만, 이들의 자아실현과 성공에 이르기까지의 여정은 굉장히 유사했다. 계층과 인종을 막론하고 말이다. 패스트푸드점 직원과 판사의 교육 철학이 같고, 1세기 전 아인슈타인의 어머니가 행한 양육법이 지금과 다르지 않다. 수많은 실제 사례와 검증된 학습이론, 뇌 과학과 아동발달 등 최근 과학적 연구를 바탕으로 밝혀낸 이 양육 공식 (The Formula) 은 ‘아이를 어떻게 키워야 하는가’에 대한 가장 분석적이고 전략적인 해답을 알려준다.

  • 작별 일기
    최현숙 (지은이) | 후마니타스 | 2019년 9월 "삶의 끝에 선 치매 노모와 함께한 천 일의 기록"

    <할배의 탄생>, <할매의 탄생>을 쓴 저자이자, 요양보호사와 사회복지사로서 독거노인을 돌보던 최현숙의 에세이 <작별 일기>는 실버타운에 입주하게 된 부모 곁에서 써 내려간 천 일의 기록이다.

    2015년 가을부터 알츠하이머와 조울 증상이 깊어져 점차 '해체'되어가는 엄마를 바라보면서 더 이상 기록하는 일을 미룰 수 없다고 판단한 저자는 2016년부터 본격적으로 엄마와의 시간을 가지며 기록하기 시작했다. <작별 일기>는 부모의 늙어 감과 병든 노모의 변화 및 죽음을 한 가운데에서 관찰하며 가감 없이 적은 저자의 일기와, 다섯 남매의 솔직한 방문 보고서를 바탕으로 구성된 책이다.

    돌봄노동자이자 페미니스트인 저자는 한국 사회에서 한 여성이 늙고 병들어 결국 생을 마감하기까지의 긴 과정을 다각도로 바라보고 세세히 기록하면서, 병든 노모의 곁을 지키는 가족들의 역할과 의미를 진지하게 짚고, 인간의 존엄과 의료 윤리에 대해 되묻는다. 자신이 돌보던 가난한 노인들의 이야기와 실버타운 노인들의 삶을 통해 자본주의 하의 실버산업에 대한 문제 제기, 돌봄노동의 현실에 대한 분석도 더한다. <작별 일기>는 한 개인의 사적인 기록을 넘어, 나이 든 부모를 둔 이들에게나 결국엔 노년을 향해 나아갈 모두에게 생각할 거리들과 묵직한 여운을 남긴다.

  • 나보코프 문학 강의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지은이), 김승욱 (옮긴이) | 문학동네 | 2019년 10월 "걸작은 어떻게 걸작이 되는가"

    “대여섯 권 정도의 책만 제대로 알아도 얼마나 대단한 학자가 될 수 있을까” 귀스타브 플로베르의 문장을 인용하며 강의가 시작된다. <롤리타>, <창백한 불꽃> 등의 작품을 남긴 소설가이자 하버드, 스탠퍼드, 코넬 대학 등에서 문학을 연구하고 강의한 연구자이기도 한 블라디미르 나보코프가 진정한 의미에서 독자가 되고 싶은 이들을 자신의 강의에 초대한다. 톨스토이의 예술을 즐기려면 '100년 전 모스크바와 페테르부르크 사이를 달리던 야간열차의 객차 안 풍경을 눈으로 그려보겠다"는 마음을 먹어야 한다고 말하는 게 나보코프의 관점이다. 그에 따르면 우리는 책을 "읽을" 수 없다. "다시 읽을 수" 있을 뿐이다. 그렇다고 미리 겁을 집어먹을 필요는 없다. <안나 카레니나> 처럼 위대한 소설은 자주 발견되는 게 아니기에, <안나 카레니나>를 또 한 번 읽을 수 있는 건 오히려 감사한 일이 될 것이다.

    걸작을 걸작으로 만드는 요소를 찾기 위해 나보코프는 다음과 같은 작가와 작품을 호명한다. 제인 오스틴 <맨스필드 파크>, 찰스 디킨스 <황폐한 집>, 귀스타브 플로베르 <보바리 부인>,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 마르셀 프루스트 <스완네 집 쪽으로>, 프란츠 카프카 <변신>, 제임스 조이스 <율리시스>. 카프카의 <변신>을 읽고 마음의 진동을 느낀 독자에게 예술이란 "아름다움에 연민을 더한 것"이기에 당신은 "훌륭하고 위대한 독자의 반열"에 오른 것이라는 축하 인사가 던져지고, 찰스 디킨스의 한 인물에게서 도저히 눈을 뗄 수 없는 독자에게 "위대한 작가의 세계에서는 과연 아주 비중이 적은 인물조차, 2펜스를 허공으로 던진 이 남자처럼 우연히 등장한 인물조차 살아갈 권리를 갖고 있습니다"라는 윤리적이기까지 한 설명이 덧붙여진다. 우리가 익히 안다고 생각했던 작품이, 감동적이라고 생각했던 그 작품이 왜 감동적인 것인지에 대해 나보코프는 '예술가의 열정, 과학자의 참을성'을 발휘해 섬세하게 강의하고, 그렇게 각자의 강의실에서 각자의 문학은 '다시' 시작된다.

10.222019
  • 방랑자들
    올가 토카르추크 (지은이), 최성은 (옮긴이) | 민음사 | 2019년 10월 "2018 노벨문학상, 올가 토카르추크 대표작"

    기나긴 여행을 떠나는 '나'는 선언한다. 한 곳에 정착하는 유전자가 내겐 없다고. "버스의 진동, 자동차의 엔진 소리, 기차와 유람선의 흔들림"과 같은 움직임만이 '나'의 연료라는 것을. 모두가 축하해주는 길로 가지 못하고, 순간 속에서 충만한 삶을 사는 사람으로 태어났다는 것을 받아들이겠다고 말이다. 그 이후 펼쳐지는 100여 편의 에피소드들은 발길 닿는 대로 유랑하며 사색에 잠기는 '나'의 여정을 닮았다. 소설의 시점은 '나'였다가 여행길에 만난 사람이었다가 토마스 쿡, 쇼팽의 동생, 짜르 등을 넘나들고, 장소는 공항과 호스텔, 기차 식당칸에서부터 이국의 박물관과 성당, 미로와 황궁까지 각양각색이다. 시공간, 구성, 형식, 무엇 하나 고정적이지 않은 짧은 이야기들은 각기 생명력을 부여받아 반짝인다.

    '경계를 넘어서는 과정을 삶의 한 형태로 표현한 상상력'이 돋보인다는 심사평과 함께 올해 '2018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올가 토카르추크의 대표작이다. 2008년 폴란드 최고 권위 문학상인 니케상과 2018년 맨부커 인터내셔널상을 수상하기도 한 <방랑자들>은 저마다의 사연으로 표류 중인 이들을 그린다. 소설은 한 곳에 안주하고 정체되어 결국 부패하는 것을 경계하며 '떠남'을 제안한다. 이 '여행'은 다른 곳으로의 물리적인 이동만이 아니다. 유무형의 한계를 넘어, 그동안 소유하고 욕망해온 것들로부터 우리를 자유롭게 하고, 시간은 '심리적인 것'이라 말하며 현실의 굴레로부터 해방시킨다. 이는 바로 우리가 소설에 끊임없이 매혹되는 이유가 아닐까. 독자를 다른 세계로 이끌어 일상을 새로 볼 수 있도록 하는 문학의 매력이 빛난다.

  • 아이의 공부 태도가 바뀌는 하루 한 줄 인문학
    김종원 (지은이) | 청림Life | 2019년 10월 "하루 한 줄 인문학, 공부의 이유"

    "공부는 왜 해야 해요?" 좋은 대학에 가기 위해서? 아이의 질문에 답하기는 쉽지 않다. "그럼, 어떻게 공부해야 해요?" 이 또한 어렵다. 학원을 옮기고, 온종일 자리에 앉아 공부해도 성적이 오르지 않으면 아이도 부모도 답답하기만 하다. 전작 <아이를 위한 하루 한 줄 인문학>에서 '공부만 잘하는 아이'가 아니라 '자존감이 높고, 마음이 건강한 아이'로 키우는 방법을 이야기했던 김종원이 이번에는 '공부의 이유' 에 대해 고민한다.

    저자가 말하는 공부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말하는 공부와는 조금 다르다. 일상이 곧 즐거운 공부로 이어지고, 그렇게 스스로 공부한 것이 자신을 성장하게 하는 그런 공부. 지성인의 공부 혹은 일상의 공부를 말한다. 지성인은 공평하지 않은 일상을 보낸다. 그들이 자신에 대해 성실하고, 더 자주 공부할 기회를 만들기 때문이다. 좋은 기회와 영감이 매일 그 사람에게만 찾아가는 것처럼 느껴진다. 이제 아이와 함께 '공부의 이유'를 고민하고, 그 멋진 삶을 경험해보자.

  • 다시는 그전으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권김현영 (지은이) | 휴머니스트 | 2019년 10월 "여성주의 활동가 권김현영 첫 단독 저작"

    "페미니스트로 살면서 목소리를 낸다는 건 인신공격에 계속 노출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책 서문에서 발췌한 문장이다. 세상에 내놓는 한 마디 한 마디에 비난과 공격이 매섭게 꽂혀드는 경험을 하는 사람의 말은 어떤 걸까. 더 탄탄한 근거와 논리로 무장해야 할 것이다. 맥락 없는 비난은 허술한 틈을 우연히 뚫을 때 갑작스러운 정당성을 갖게 되니까. 깐깐하고 깊은 사유는 유일한 방패다.

    그렇게 20년간 한국 사회에 목소리를 내어 온 여성주의 연구활동가 권김현영의 첫 단독 저작이다. 긴 세월 벼려온 사유는 투박한 일상을 예리하게 갈라 가려져 있던 위계를, 차별을, 배제를 보여준다. 그간 다양한 매체에 기고한 원고를 엮은 이 책의 글 중엔 한국의 페미니즘이 이미 지나고 넘어온 이야기도 있다. 저자는 "진화하고 싶기 때문"에 이 글들까지도 포함했다고 한다. 지나온 역사를 알아야 논의를 초기화하지 않을 수 있다. 그가 밟아온 사유의 진보 위에서 다음 세대는 또 다음 단계의 논의를 할 수 있을 것이다.

  • 다름 아닌 사랑과 자유
    김하나, 이슬아, 김금희, 최은영, 백수린, 백세희, 이석원, 임진아, 김동영 (지은이) | 문학동네 | 2019년 10월 "김하나.최은영 등 9명 작가의 특별한 이야기"

    동물권행동 카라(KARA, Korea Animal Rights Advocates)는 시민들과의 지식과 배움의 공유를 통해 동물에 대한 이해와 공감, 참여를 확대하고, 폭넓은 연구와 다양한 실천을 통해 문화와 인식의 긍정적 변화 유도, 동물복지 증진 등에 힘써온 비영리 동물보호단체이다. 김하나,이슬아,김금희,최은영,백수린,백세희,이석원,임진아,김동영 총 9명의 작가가 동물권행동 카라의 후원 프로그램인 '일대일 결연'에 한마음으로 참여하여 힘을 모았다.

    김하나의 '콩돌이', 이슬아의 '탐', 김금희의 '장군', 최은영의 '레오', 백수린의 '뽀리', 백세희의 '쥬딩' '수지' '부기' '짱이', 이석원의 '황태', 임진아의 '키키', 김동영의 '생강'... 9명의 작가는 각자의 반려동물과 함께한 날들에 관한 이야기를 다양한 목소리로 들려준다. 사랑스럽고 따뜻한 이야기뿐 아니라, 유기와 학대로부터 구조된 동물들을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일에 대한 언급도 잊지 않는다. <다름 아닌 사랑과 자유>를 통해 작고 소중한 생명을 지켜내기 위해 따스한 손길을 더한 9명 작가의 특별한 이야기를 만날 수 있다.

10.252019
  • 트렌드 코리아 2020
    김난도, 전미영, 최지혜, 이향은, 이준영, 김서영, 이수진, 서유현, 권정윤 (지은이) | 미래의창 | 2019년 10월 "12간지의 완성, 그리고 새로운 시작"

    2008년 겨울, <트렌드 코리아 2009>라는 신간을 소개하면서 "세리 전망과 같이 매년 계속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라는 말로 새로운 시리즈의 탄생을 기원했던 일이 생각난다. 금융 위기가 전 세계를 강타했던 당시는 삼성경제연구소가 펴낸 <세리(SERI) 전망>의 시대였다. 그 경제 전망서의 홍수 속에서 '트렌드 코리아'는 소비 트렌드 전망서라는 새로운 시장을 개척했다. 그리고 해를 거듭하며 이제는 경제경영 분야의 가장 큰 '연례 행사'가 되었다.

    2019년 가을, <트렌드 코리아 2020>을 보며 그렇게 잠시 감회에 젖는다. 그러나 지금 12년이라는 긴 세월을 추억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지난 1년을 회고하고 다가올 1년을 준비하기에도 벅찬 시간 아닌가. 대표 저자인 김난도 교수가 "1년에 책을 두 번 내야 할 정도"라 말할 만큼 트렌드 변화의 속도가 빠르니, 바쁜 독자들은 유행을 따라가기조차 힘든 실정이다. 결국 이 한 권의 책은 놓칠 수밖에 없었던 동향들을 완벽하게 정리한 '커닝 페이퍼'가 된다.

    해당 연도의 지지(地支)로 10음절의 트렌드 키워드를 선보이는 전통도 책이 없던 시절까지 합치면 열네 번째를 맞는다. 특히 이번 <트렌드 코리아 2020>은 책으로 12간지를 한 바퀴 돌았다는 각별함이 있다. 이를 축하하며, 그 해가 경자년 쥐띠 해라는 것에도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고 싶다. 쥐는 12간지의 첫 번째 동물 아니던가. 이 시리즈가 혁신과 진화를 통해 다시 새로운 1회전에 성공하기를 기대해 본다. 트렌드 코리아의 제2막이 힘차게 올라간다.

  • 일의 기쁨과 슬픔
    장류진 (지은이) | 창비 | 2019년 10월 " '진짜' 화제의 소설, 장류진 첫 소설집 출간"

    소설을 다루는 사람 입장에서 더 많은 사람이 소설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고 소설이 화제의 중심에 서길 늘 바라지만, 소설 그 자체가 화제가 되는 일은 실은 그리 자주 일어나진 않는다. 2018년 창비신인소설상으로 등단한 장류진의 소설은 바로 그 흔치 않은 일을 가능케 한 힘이 있는 소설이다. '하이퍼 리얼리즘'으로 무장한, '웃픈' 직장생활의 현실을 다룬 소설 <일의 기쁨과 슬픔>은 웹사이트에 공개됨과 동시에 SNS에서 말 그대로 화제를 모았으며, 서버가 다운될 정도로 트래픽이 발생했다. 40만건의 조회수가 발생한 이 소설이 단행본으로 엮여 드디어 독자를 찾았다.

    결혼식 직전 청첩장을 개별적인 점심모임을 통해 받았다면, 반드시 '봉투'라도 보내야 하며, 실수로 그룹 아이디 계정에 전체회신을 했다가는 전 직원이 나의 부서이동 계획을 알게 되는 불상사가 생길 수 있다. 밥을 사기로 한 동료가 8,000원 짜리 메뉴를 주문했는데, 밥을 얻어먹는 입장에서 12,000원 짜리 메뉴를 주문하는 건 상도에 어긋난 일이다. (<잘 살겠습니다> 中) 아무도 알려주지 않는 미묘한 경계가 파티션 위를 거미줄처럼 얽고 지나가고, 일의 기쁨과 슬픔 역시 경계를 따라 교차한다. '개발적으로' 하고 싶은 일을 다 하게 해주겠다는 말에 스타트업 회사로 이직한 개발자 동료의 짜증까지 기어이 이해하게 되고, 친하지도 않은 그를 위해 생일선물을 충동구매한다. (<일의 기쁨과 슬픔> 中) 비효율과 굴욕으로 점철된 생활, 그러나 월급을 받아 항공권을 결제하면 다시 다음 달이 시작된다.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뜨고, 우리는 다시 '흐르는 물에 삽을 씻고' 제 자리에서 오늘의 일을 해야 할 것이다. 동료의 한숨 소리에 왈칵 눈물이 나기도 하고, 그 동료의 슬픔을 이해하기에 '쉴드' 치기도 하는 나날. 이야기가 묘사하는 절묘한 기쁨과 슬픔의 순간들, 소소하고 산뜻하고 섬세하다. 탁월하게 우리가 사는 이 시대를 묘사해온 소설가 정이현이 "오늘의 한국사회를 설명해줄 타임캡슐을 만든다면 넣지 않을 수 없는 책"이라는 평과 함께 추천했다.

  • 별똥별이 떨어지는 그곳에서 기다려 시즌 1: 1
    만물상 (지은이) | 재미주의 | 2019년 10월 "만물상 작가 신작, 마법과 환상의 나라 이야기"

    아기자기한 상상력으로 가득찼던 <양말 도깨비>의 만물상 작가가 돌아왔다! 이번엔 마녀와 고양이, 그리고 빛과 어둠의 세계에 대한 이야기다. 거대하고 탄탄한 세계관 속 핵심 공간 '테이블랜드'는 마법과 미신이 존재하고 별똥별이 떨어지면 마녀가 탄생하는 이상하고 아름다운 나라이다. 이곳에서 태어난 마녀 에픠와 그녀의 고양이 비비는 별똥별이 계속해서 떨어져 실종되고 있는 이유를 쫓아 모험을 떠나게 된다.

    사랑스럽고 귀엽지만 각자의 비밀을 간직하고 있는 다양한 캐릭터들과 신비스럽고 어딘가 묘한 만화 속 배경, 그에 어울리는 만물상 작가의 화려한 그림체가 돋보이는 아름다운 작품이다. <양말 도깨비> 이후 새로운 환상담을 기다리고 있던 기존 독자들에게는 커다란 만족을, 만물상 작가를 처음 만나는 새로운 독자들에게는 이전 책까지 찾아보고 싶게 만드는 '마력'을 가진 이야기다.

  • 참 괜찮은 눈이 온다
    한지혜 (지은이) | 교유서가 | 2019년 10월 "성공보다 실패가 많았던 삶을 통해 배운 것들"

    1998년 한 일간지 신춘문예로 등단하여 <안녕, 레나>와 <미필적 고의에 대한 보고서> 두 권의 소설집을 발표한 한지혜 작가의 첫 산문집. 가난의 기억이 선명한 유년기, 성공보다 실패가 많았던 젊은 시절, 그리고 엄마이자 여성 작가로 살아오면서 경험한 일들과 마주한 세상의 풍경들에 관해 담백한 문장으로 써 내려간 53편의 산문을 수록했다.

    개천과 단칸방, 철거촌 등에서 기거하며 몇 번이고 들이닥쳤던 빚쟁이들을 견뎌내야만 했던 가난의 시절이 있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작가가 된 후에도 삶의 형편은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작가는 가난, 절망과 어떻게든 싸워온 지난날들을 회상하며 낙관과 비관 그 어느 한쪽으로도 치우침 없이 내밀한 이야기를 반듯하게 밀고 나간다. 한국 사회에서 엄마이자 여성 작가로서 살아간다는 것, 그 안에서의 고민과 자책과 열등을 가감 없이 고백하고, 작가로서의 의무와 권리를 위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깊이 고민한다. 개인과 가족의 이야기를 넘어 문단 내 성폭력, 미투, 저소득층 아이들의 아픈 현실 등 사회적 이슈에 대해서도 분명한 목소리를 낸다.

    언제나 실패에서 출발한 사람이며, 그 실패가 결국 자신을 여기까지 데리고 왔음을 담담하게 말하는 작가는 자신의 경험으로 섣불리 너를 안다고 하거나, 너에게 위로를 보낸다고 말하지 않는다. 삶으로 빚어진 글 자체가 위로가 되고 희망이 된다. 이런 참 괜찮은 산문집을 만난다는 건 행운이고, 기쁨이다.

10.292019
  • 세계미래보고서 2020
    제롬 글렌, 박영숙 (지은이), 이희령 (옮긴이) | 비즈니스북스 | 2019년 10월 "‘원더키디’는 어디쯤 오고 있는가?"

    최첨단 미래 기술의 최신 동향을 파악한다는 것, 그것은 우리 일반 독자들에겐 '트렌드 코리아'가 말하는 소비 트렌드보다 더욱 따라잡기 힘든 영역이다. 늘상 듣게 되는 인공지능, 자율주행 같은 용어들이 당장 내 눈앞의 일은 아니라는 사실은 우리를 미래 기술로부터 점점 멀어지게 한다. 30년 전 지구의 노멀키디들이 바라 마지않던 2020년, '우주의 원더키디'가 그렸던 그 미래가 아직 오지 않았다고 실망할 독자들도 있을 터다. 우리가 꿈꿨던 미래는 그렇게 오는 것 같으면서도 오지 않고 있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일례로 불과 1년 사이, 우리는 전에 없던 5G 상용화를 이루어 내지 않았는가.

    인공지능, 유전자 편집, 로봇공학, 태양광 및 재생에너지, 블록체인. 글로벌 싱크탱크 '밀레니엄 프로젝트'에서 선정한, 2020년대를 관통할 다섯 가지 플랫폼 기술이다. 너무 익숙한 키워드여서 잘 안다고 생각하지만 실은 잘 모르는 것들이다. 이 책은 일깨운다. 기술의 최전선에선 지금도 놀라운 일들이 펼쳐지고 있다고. 그러나 이 책은 기술 용어집이 아니다. 혹여 같은 책을 매년 읽어야 하냐고 생각했다면 오산이다. 책을 읽기에 앞서, 미래는 준비하는 자에게만 열려 있다는 사실을 새삼 되새겨야 할 것이다. 레이 커즈와일이 2045년으로 예언했던 '특이점'이 당장 내일 올지,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 나를 돌보지 않는 나에게
    정여울 (지은이) | 김영사 | 2019년 10월 "정여울 신작 에세이 '나를 돌보는 법'"

    문학과 여행, 심리학 등 다양한 주제에 관해 성실한 글쓰기를 해온 정여울 작가가 이번에는 마음치유 이야기를 통해 각자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시간을 제안한다. 한때는 상처 입은 사람이었던 작가는 지난 10여 년 동안 심리학을 공부하면서 아픔을 치유해왔다. 그 특별한 경험을 토대로 타인의 아픔을 가만히 어루만지는 메시지를 <나를 돌보지 않는 나에게>에 담았다.

    초등학교 시절에는 한 선생님으로부터 여러 번 얻어맞고, 미움을 받았다. 훗날 그 시절에 선생님뿐 아니라 친구들로부터 당한 것이 왕따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향성을 극복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을 것 같은 위기감을 느낀 저자는 끊임없이 배낭여행을 하고, 강의를 하고, 바쁘게 사람들을 만나고 다녔다. 취직을 하고 싶었지만 번번이 면접에서 떨어지면서 불안감과 고립감을 경험하기도 했다. 이렇듯 작가는 그 누구도 알지 못했던 상처와 괴로움을 고백하며, 자신의 트라우마, 고통과 정면으로 마주하고, 더 나은 삶으로 나아가고자 노력한 시간에 대해 들려준다. 어둠의 시간을 걷고 있을 당신, 깊은 상처로 허덕이고 있을 당신을 한껏 껴안아주는 다정한 기록이다.

  • 정치적 감정
    마사 C. 누스바움 (지은이), 박용준 (옮긴이) | 글항아리 | 2019년 10월 "품위 있는 사회에는 감정이 필요하다"

    차별금지법. 생활동반자법. 이 같은 제도는 배제되어 있던 이들을 품는 틀과 사회의 질서를 만들어 낸다. 그러나 제도가 모든 걸 해결해주진 않는다. 그 과정의 에너지를 모으고, 지속 가능하게 하는 것은 감정의 역할이다. 이를테면 차별받는 이들에 대한 애틋한 연민의 감정, 원하는 형태의 가족을 꾸리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 공감하는 마음 같은 것 말이다.

    국가나 사회의 작동에 관해서라면 왠지 이성이 독점하고 있는 듯 느껴지지만 감정은 중요한 한 축을 담당한다. 감정으로부터 끌어올려진 합의는 공동체가 추구해야 할 신념과 가치로 자리잡기 때문이다. 마사 C. 누스바움에 따르면 모든 정치적 원칙은 "오랜 세월에 걸친 안정성을 보장받기 위해 감정적 기반을 필요로 한다."

    '정치적 감정'은 자칫 추상적으로 흐를 수 있는 주장이지만 그는 '예술을 통한 공적 감정의 함양' 같은 구체성 있는 해법을 제시하며 현실에 단단하게 발붙인다. 마사 C. 누스바움의 철학은 섬세하며 정의롭다. 그 세세한 결을 놓치지 않고 따라가려면 일독만으로는 부족할 것이다.

  • 아홉 명의 완벽한 타인들
    리안 모리아티 (지은이), 김소정 (옮긴이) | 마시멜로 | 2019년 10월 "2018 굿리즈 선정 베스트 픽션"

    명상과 수련을 통해 심신을 치유하는 열흘 간의 프로그램으로 유명한 고급 휴양지 '평온의 집'. 주요 고객은 과거와 완전히 작별하고 새로운 삶을 살기 위해서라면 어떤 대가든 치르겠다는 사람들이다. 슬럼프에 빠진 인기 로맨스 작가, 거액의 복권에 당첨된 후 오히려 불행해진 부부, 이혼 전문 변호사와 전직 스포츠 스타를 비롯한 아홉 명의 사람들이 각자의 상처를 극복하기 위해 이 곳을 찾는다. 그런데 막상 시작된 프로그램은 뭔가 이상하다. 외부와 차단된 채 매일 혈액 검사와 묵언 수행을 하고, 재료를 알 수 없는 스무디를 먹어야 한다. 기분이 좋아지고 몸이 가벼워지는 것은 사실이지만 수상한 낌새는 계속된다. 이들은 원하던 대로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 이 곳을 나갈 수 있을까.

    전작 <허즈번드 시크릿>과 드라마 '빅 리틀 라이즈'의 원작인 <커져버린 사소한 거짓말>이 연이어 베스트셀러가 되며 주목을 받은 리안 모리아티의 최신작이다. 2018년 굿리즈 '베스트 픽션'에 선정된 작품으로, 소설을 읽고 감명받은 니콜 키드먼의 주도로 그가 주연과 제작을 함께 맡은 동명의 TV시리즈 방영이 확정되기도 했다. 의심스러운 프로그램에 참여한 아홉 사람 각각의 시점에 이들을 지켜보는 '평온의 집' 주인의 시선이 더해져 독특한 흥미를 자아내고, 처음 만난 사람들이 폐쇄된 공간에서 함께 지내면서 부딪치고 소통하는 과정이 영상을 보는 듯 생생하게 펼쳐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