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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2020
  • 철도원 삼대
    황석영 (지은이) | 창비 | 2020년 6월 "거장 황석영과 노동의 삼대, 노동의 백년"

    투쟁의 역사도 유전되는 것일까. 이백만, 이일철, 이지산으로 이어지는 삼대의 후손 이진오는 굴뚝 위에 올라있다. 아파트 십육층 높이의 발전소 굴뚝 위에서, 부당한 해고에 대항하여 투쟁중인 그는 페트병에 가족의 이름을, 죽은 사람들의 이름을 붙여 그들을 호명하며 길고 추운 밤을 견딘다. 꿈과 환상의 경계를 흐릿하게 만드는 소환의 시간이 시작되면 가족들의 이야기, 노동의 백년이 유장하게 펼쳐진다. 이백만, 이일철, 이지산의 철도노동자의 역사가 노동조합과 주의자와 사상과 투옥과 함께 독립운동가 '이재유'등의 실존 인물의 역사와 엮여 흐르고, 이백만의 아내 주안댁, 막음이 고모, 이일철의 아내 신금이와 같은 여성의 역사가 장쾌하게 이야기와 어우러진다. 부당한 대우를 당한 동료를 위해 파업을 결의하고 해고를 감수하는 공장 노동자 신금이의 활동을 따라 읽다보면 이 거대한 이야기가 곧 한국인의 노동의 백년에 관한 이야기임을 깨닫게 된다.

    세계가 함께 읽는 작가 황석영이 구상부터 집필까지 30년이 걸린 필생의 역작을 펴냈다. 방북중 만난 영등포 출신 어르신의 이야기를 들으며 시작하게 된 역사를 질주하는 기차 이야기. 우리 소설의 계보를 새삼스럽게 깨닫게 한다. 염상섭의 <삼대>, 채만식의 <탁류>와 같은 거대한 이야기를 그리워한 독자가 특히 반가워할 만한 소설다운 소설. <객지>를 통해 노동하는 인간의 삶을 정확하게 들여다본 황석영이, <장길산>, <삼국지> 등을 통해 수많은 인물의 개성을 거침없이 구성하던 황석영이, <손님>을 통해 우리 역사의 모순을 직시하던 황석영이, 독보적인 이야기꾼이 돌아왔다.

  • 코로나 사피엔스
    최재천, 장하준, 최재붕, 홍기빈, 김누리, 김경일, 정관용 (지은이) | 인플루엔셜(주) | 2020년 6월 "장하준, 최재천, 김누리.. 신인류의 미래는?"

    살다가 순간순간 발견하게 될 테다. 코로나 이전의 세계에서는 당연한 일상이었지만 더 이상은 마주할 수 없게 된 일들. 황급히 집 안으로 숨는 새 길바닥에 후드득 떨어뜨리고 온 것들. 곧 다시 찾을 수 있을 거라 믿었지만 이제 우리가 알던 그 세계는 없다. 원했든 원치 않았든 우리의 의사와 상관없이 새 시대의 문은 열렸다.

    CBS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에서 최재천, 장하준, 최재붕, 홍기빈, 김누리, 김경일 6인의 석학과 진행한 코로나 이후의 시대에 대한 대담이 책으로 나왔다. 생태학, 경제학, 서비스 융합디자인학, 심리학... 여섯 명의 학자들이 각자의 분야를 바탕으로 앞으로의 세계를 더듬어본다. 각기 다른 분야이지만 모두가 공통적으로 명확하게 말하는 부분은 우리가 완전히 새로운 세상 앞에 놓여있다는 것이다. 무한한 욕구를 한정없이 증식시키던 이전의 세계로 돌아가려는 노력은 또 다른 재앙을 불러올 것이라고 한다.

    새로운 세계는 어떤 모습일까. 홍기빈 교수는 "우리의 이성과 양심으로 되돌아가서 어떤 미래를 만들지, 그 그림을 우리 스스로 결단하고 만들어야" 한다고 말한다. 세계는 한바탕 흔들렸고, 이 미증유의 사건은 어쩌면 망가져가던 지구를 다시 살려낼 질서를 만들 기회일지 모른다. 확실한 정답은 없겠지만 이 여섯 석학의 대담을 통해 어렴풋이 방향을 짐작해볼 순 있겠다. "누구도 다른 누구를 포기"하지 않고 모두가 다 같이 생존할 수 있는 방향이다.

  • 나는 절대 저렇게 추하게 늙지 말아야지
    심너울 (지은이) | 아작 | 2020년 6월 ""진짜 퇴근하고 싶다" 심너울의 하이퍼리얼 SF"

    '출근하기 전에 퇴근하고 싶은 생각이 드는 것은, 내가 출근한 미래에서 퇴근하고 싶다는 감정이 과거로 거슬러 온 것 아닐까?' 대부분의 직장인은 이미 퇴근했는데 또 퇴근하고 싶고, 벌써 집이지만 집에 가고 싶다는 생각을 해봤을 것이다. 이 발상이 밀레니얼인 SF 소설가 심너울과 만나면 퇴근하지 못해 고통받는 대학원생과 직장인의 원한을 모아 'salyojo 프로토콜'을 실행하는 상상이 된다. (<초광속 통신의 발명>) 상속세를 피하기 위해 영원히 살아있어야 하는 대기업 오너, 그리고 그의 아들인 부회장이 사내 SF 동아리와 함께 SF 연구를 하면 벌어지는 일. (<SF 클럽의 우리 부회장님>), 섬에 있는 학교의 단 한명뿐인 학생 유림을 위해 친구로 '공부봇'인 튜비를 설치하는 이야기. (<컴퓨터공학과 교육학의 통섭에 대하여>) 이렇게 누구나 경험해봤을 법한, 누구나 알고 있을 현실의 어떤 장면에서 하이퍼리얼리즘이 느껴지는 SF 소설이 탄생한다.

    자꾸만 반복되는 금요일을 소재로 한 짧은 단편집 <땡스 갓, 잇츠 프라이데이>로 인상을 남긴 SF 소설가 심너울이 2018년 6월부터 2019년 9월까지 쓴 소설을 모아 엮었다. "덕질에 생산적인 이유가 어딨어요. 그냥 재밌어서 하는 거지!"라는 SF 동아리 회원의 외침처럼 (<SF 클럽의 우리 부회장님>) '좋아서 쓴' 신선한 이야기로 가득 채웠다. 작가가 직접 '와중에는 내가 써놓고도 뻔뻔할 정도로 스스로 좋아하는 작품'도 있다고 말하는, 반짝이는 이 소설집이 '심너울'을 기억하게 할 것이다.

  • 다시 리더를 생각하다
    존 C. 맥스웰 (지은이), 이한이 (옮긴이) | 비즈니스북스 | 2020년 5월 "좋은 사람에서 더 나은 사람으로!"

    장하준 교수의 명저 <사다리 걷어차기>에는 후진국의 성장을 가로막는 선진국들의 '앞서가기 전략'이 소개된다. 우리 삶의 모습도 별반 다르지 않다. 남들보다 한발이라도 앞서려 하고, 또 그렇게 사다리에 오른 사람들을 우리는 리더라 부른다. 물론 그것이 꼭 틀린 말은 아니다. 개인의 성공은 조직에 큰 원동력이 되기도 하니까. 리더십의 대가로 불리는 저자 존 맥스웰도 오늘의 자신을 만든 건 "내가 어디까지 높이 올라갈 수 있는가?"라는 물음이었다고 고백한다. 그러나 세상이 혼란스럽고 기존의 리더십이 큰 도전에 직면해 있는 지금, 우리는 리더를 바라보는 관점을, 리더가 되려는 진짜 목적을, 이 시대에 걸맞은 리더의 조건을 다시 생각해야만 한다.

    존 맥스웰은 이번 신작에서 새로운 리더십을 고민하는 이들을 위한 11가지 원칙을 제시한다. 그 핵심은 리더십의 전환이다. 리더는 변화를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누구보다 앞서서 변화를 추구해야 한다는 것. 또 리더가 되려는 사람은 그 일이 나를 위해서인지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인지 끊임없이 물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결국 진정한 리더는 함께 가는 사람, 즉 홀로 사다리를 오르는 사람이 아닌, 사람들이 각자의 사다리를 세울 수 있도록 돕는 사람이다. 자 이제 책의 제목에서 리더를 사람으로 바꿀 시간이다. 우리는 스스로의 삶을 이끄는 한 사람의 리더로서,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한 힌트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책을 읽으며 다시, 사람을 생각한다.

6.52020
  • 시선으로부터,
    정세랑 (지은이) | 문학동네 | 2020년 6월 "살아남은 모든 여성에게 존경과 사랑을"

    심시선이라는 연결고리를 중심으로 이루어진 한 가족이 하와이로 떠난다. 그들의 어머니이자 할머니인 심시선의 십 주기 제사를 지내기 위해서다. 생전 '형식만 남고 마음이 사라지면 고생일 뿐'이라고 제사를 반대했던 심시선이었고, 그의 후손들답게 심시선 여사가 싫어하는 방식으로 행사를 치르진 않을 예정이다. 두 번의 결혼, 서로 다른 성씨로 이루어진 이 가족은 정세랑의 사람들답게 올곧다. 가족 각각의 개성, 단정하고 부지런한 성품과 포기하지 않는 품성, 새와 바다를 사랑하는 다정한 시선과 테러 이후의 삶을 추스르기 위해 애쓰는 마음. 그들의 면면을 거슬러 올라가면 '가모장' 심시선이 있다. '늘 소문과 분쟁에 휩싸여 사셨던' 등을 돌리고 선 여자. T면과 하와이와 뒤셀도르프를 거치며 늘 논쟁을 불러 일으키던 화가이자 작가, 우리는 '존재한 적이 없는' 이 사람, 심시선을 기억해야 한다.

    비극적인 천재 화가 마티아스 마우어와의 인연은 심시선을 '문제적 여성'으로 만들었다. 많은 예술가가 그랬듯 젊은 심시선은 뮤즈로서 소비되었고, 그의 얼굴과 몸은 그림 속에 갇혔다. 그러나 한국전쟁 당시 경험한 학살, 인간의 저열한 악의와 폭력, '모난 돌'인 그를 자꾸 내리치는 시선을 받아내면서도 심시선은 살아남았다. 그는 '살아있는 예술가가 되는 길'(30쪽)을 택했고, 많은 말과 저서와 작품과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남기고 자연스럽게 떠났다. 어떻게 살아있을 수 있었을까, 돌아보면 아득한 시간을 지나 '휘적휘적하지만 다정한 허수아비' 같은 사람을 만나 사랑을 하고, 세상을 향해 계속 자신의 말을 전하며.

    2010년 우리 곁으로 찾아온 작가 정세랑이 2020년을 맞아 이 시대를 위한 장편소설을 선보인다. 20세기를 살아낸 여자들에게 바치는 21세기의 사랑 이야기. 돌아가신 할머니의 이름을 한 글자 바꾸어, 심시선이라는 이름을 만들어내며 작가 정세랑은 우리가 기억해야 할 어떤 계보에 대해 이야기한다. 당신은 잘못되지 않았다고, 그러니 당신의 손을 잡고 당신의 곁에 서겠다고 말하는 다정한 눈, <피프티 피플>의 손 하나하나를 잡던 그 눈으로 정세랑이 사랑을 담아 전한다. 김하나, 박상영, 김보라 추천. "존재한 적 없었던 심시선처럼 죽는 날까지 쓰겠다."라고 말하는 작가의 말이 반갑고 고마워지는 소설. 정세랑의 다음 소설이 벌써부터 읽고 싶어진다.

  • 사람에 대한 예의
    권석천 (지은이) | 어크로스 | 2020년 6월 "선의를 적극적으로 작동시킬 것"

    책에서 인용한 영화 대사 한 줄. "악이 승리하려면 선한 자들이 가만히 있기만 하면 된다."(영화 '갱스터 스쿼드'). 이 말은 우리 각자의 내면에도 해당된다. 우리가 악해질 때는 선한 자아가 적극적으로 작동하지 않을 때다.

    이 책에서 권석천이 일관되게 주목하는 것은 애매한 순간들에 드러나는 일상의 권력이다. '사람에 대한 예의'는 대단한 갑질의 순간에만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내가 돈을 주고 고용한 사람이 원하는 만큼의 서비스를 보여주지 않을 때 새어 나오는 짜증에서 이미 예의는 없다. 조직 사회에 빠르게 적응하지 못하는 후배에게 "너를 생각해서 하는 말인데"라며 시작하는 힐난에서 벌써 예의는 증발됐다. 두 사람 중 한 명만 지을 수 있는 표정과 할 수 있는 말이 있다면 둘 사이엔 이미 권력 관계가 존재하는 것이다. 그 사실을 잊고 적극적으로 약자의 편에서 생각하기를 멈추는 순간 우리는 악이 된다.

    일상의 관성을 이기는 것은 쉽지 않다. 도덕률은 권력을 가진 자가 자신의 편의에 맞춰 만든 것이고, 우리의 뇌는 스스로를 악인보단 영웅으로 여기는 데에 익숙하다. 기존의 도덕률을 해체하여 무엇이 진짜 선인지 알아내기 위해선 정신 바짝 차리고 사유해야 한다. 권석천의 글이 빛나는 이유는 스스로의 위치에 대한 고민을 끊임없이 하기 때문이다. 그는 멀리 있는 거악을 겨냥하기보다 오늘 나의 나태한 악행을 먼저 살핀다. 그 반성엔 숨을 곳이 없기에 변명도 없다. 글의 곳곳에 배어 있는 그의 "나도 별수 없다"는 깨달음이, 읽는 이의 "과연 나는 어떤가"하는 질문으로 이어진다. 우리 모두가 "별수 없다"는 깨달음을 연쇄적으로 얻을 때 세상은 조금 더 선해질 것이다.

  • [세트] 태양은 움직이지 않는다 + 숲은 알고 있다 + 워터 게임 - 전3권
    요시다 슈이치 (지은이), 서혜영, 이영미 (옮긴이) | 은행나무 | 2020년 5월 "요시다 슈이치 데뷔 20주년 기념작"

    겉으로 보기엔 평범한 고등학생인 다카노. 그의 실제 신분은 스파이 조직 'AN 통신'에 소속되어 10년간 혹독한 훈련을 받은 예비 첩보원이다. 역시 겉보기엔 평범한 회사로 보이는 'AN 통신'의 주된 업무는 거대 에너지 기업에 잠입해 세계 자원 개발 기밀을 빼내어 거액에 판매하는 것이다. 정보에 대한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는 명목으로 요원들의 몸에는 언제든 터질 수 있는 기폭 장치가 설치되어 있다. 다카노는 정식 요원이 되기 위한 마지막 테스트만을 남겨두고 있다. 조직을 배신하고 도망친 요원을 추적해 기밀을 되찾으라는 최후의 미션. 문제는 그 요원이 다카노의 유일한 친구였던 야나기라는 것이다. 그동안 사고로 실종된 줄만 알았던 야나기의 흔적을 찾던 다카노는 그가 몰래 남겨둔 편지를 발견하고 마는데…

    <퍼레이드>, <악인>, <파크 라이프> 등 수많은 작품을 통해 동시대인의 심리를 섬세하게 포착해온 요시다 슈이치. 그가 스스로 “신경지를 개척했다. 내 문학 인생의 분기점이 될 작품"이라 자부한 '다카노 3부작'을 만난다. 동아시아 우주 태양광 발전을 둘러싼 첩보전을 다룬 <태양은 움직이지 않는다>는 전면개정판으로, 다카노의 성장 과정을 다룬 프리퀄 <숲은 알고 있다>와 세계 수력 발전을 둘러싼 국제 정보 전쟁을 그린 <워터 게임>이 함께 출간되었다. 세계를 종횡무진하며 화려하게 펼쳐지는 생생한 이야기에 일본에서는 소설 원작 영화와 드라마가 동시에 제작되었다. 특히 동명 영화 '태양은 움직이지 않는다'는 한효주, 변요한이 주연을 맡아 화제를 모았고, TV 드라마는 현재 일본에서 방영 중이다. 한국인 요원의 등장과 서울이 주 활동 무대 가운데 하나로 등장한다는 점도 특별한 흥미 포인트다.

  • 메이커스 주니어 01 : 피라미드 홀로그램
    메이커스 주니어 편집팀 (지은이) | 동아시아사이언스 | 2020년 5월 "만들면서 배우는 과학, <메이커스 주니어> 창간호"

    새로운 어린이.청소년 과학 키트 무크지의 탄생이다. 초중등 교과 과정 속 과학 원리를 이용한 키트가 매력적인 토픽을 담은 매거진과 만났다. 창간호에서는 '피라미드홀로그램' 키트를 조립하며 '빛의 반사'에 대해 심층적으로 배운다. 허공의 피라미드 안에서 나비가 날아다니는 게 어떻게 가능할까? 감탄이 절로 나오지만 과정은 무척 쉽고 간단하다. 준비물은 스마트폰, 소요시간은 단 15분. 초등 저학년도 혼자서 거뜬히 해낼 수 있다. 잡지 안의 설명만 따라하면 내가 직접 홀로그램 영상을 창작하는 것도 가능하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정말로 쉽다!

    역사 속의 위대한 과학자들은 빛을 어떻게 다루었을까? 홀로그램 기술은 어디에 쓰이고 있으며, 앞으로 우리 삶을 어떻게 바꿔 놓을까? 탁월한 입담을 가진 전문 필진들이 과거와 현재, 미래를 관통하는 과학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는다. 빛의 성질에 대한 명쾌한 개념 정리와 더불어, 학교나 집에서 활용할 수 있는 동영상 학습 자료까지 제공된다. 과학 공부의 깊이와 재미를 원하는 모두가 반길만한 책이다.

6.92020
  • 구멍가게, 오늘도 문 열었습니다
    이미경 (지은이) | 남해의봄날 | 2020년 6월 "이미경, 다시 '구멍가게'를 찾아 떠나는 여행"

    <동전 하나로도 행복했던 구멍가게의 날들>을 통해 20년 동안 작업한 구멍가게 그림을 소개하고, 따뜻한 이야기들을 들려준 이미경 작가. 3년 만에 신작 <구멍가게, 오늘도 문 열었습니다>를 펴냈다. 2017년부터 최근까지, 다시 구멍가게를 찾아 떠난 여행에서 만난 다정한 풍경들을 풍성하게 담아 독자들에게 건넨다.

    한때 우리의 일상에 자연스레 자리한 정감 가는 구멍가게들이 세월의 흐름에 따라 서서히 자취를 감추어버렸다. 이미경 작가는 사라져가는 작고 소중한 것들에 마음을 주고, 직접 구멍가게를 찾아다니며 눈에 담은 지붕, 대문, 간판, 우체통, 화분, 장독대, 평상, 나무를 아름다운 그림으로 표현했다. 오목수퍼, 정다운슈퍼, 현대수퍼마켙, 제씨상회... 어느 페이지를 펼쳐 보아도 따스한 색감의 구멍가게 그림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아름다운 그림 사이사이, 사람과 공간에 관한 정다운 이야기가 함께하여 읽는 동안 눈과 마음이 맑아진다.

  • 뉴타입의 시대
    야마구치 슈 (지은이), 김윤경 (옮긴이) | 인플루엔셜(주) | 2020년 6월 "올드타입과의 한판 승부!"

    가급적 접촉해서는 안 되고 웬만해서는 대면하기도 힘든 시대다. 예상치 못한 상황들은 연일 우리를 당황시키고 있다. 이제 기존의 생활 양식과 예측 도구들은 쓸모없게만 느껴진다. 인터넷은 진작에 우리 곁에 왔지만, 제대로 된 온라인 시대는 이제서야 열리는 듯하다. 오프라인에서의 거리두기는 우리 삶의 많은 것들을 바꾸고 있지만 코로나가 아니었어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았을지 모른다. 이제 기업들은, 그리고 우리 개인들은 어디로 가야 하는가? 베스트셀러 <철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로 널리 알려진 비즈니스 전략가 야마구치 슈가 새로운 미래를 열어 갈 24가지 생각의 프레임을 소개한다.

    저자는 성공에 대한 기존의 사고와 규범들을 올드타입으로 규정하고 그에 대한 대안으로 뉴타입을 제시한다. 일례로 주어진 문제를 풀기보단 문제를 먼저 찾아내고, 미래를 예측하기보단 직접 구상해 가는 능력이 이젠 더욱 중요하다는 이야기다. 코로나 펜데믹을 두고 쓴 책은 아니지만 그가 제시하는 규범들은 시대의 흐름과 일맥상통한다. 이 책을 통해 변화를 만드는 큰 줄기를 이해하고 온라인 시대에 맞춤한 인재와 기업으로 거듭날 때다. 물론 중요한 건 거창하고 거시적인 것들뿐만이 아니다. 삶을 둘러싼 모든 영역에서 뉴타입의 역할이 절실하다. 모두가 하루속히 올드타입에서 벗어나길 기원해 본다.

  • 이파라파냐무냐무
    이지은 (지은이) | 사계절 | 2020년 6월 "냐무냐무? 냠냠? 잡아먹겠다는 말인가?"

    마시멜롱이 모여 사는 평화로운 마을, 어느 날 숲 저편에서 천둥 치듯 큰 소리가 들려온다. "이파라파냐무냐무" 그리고, 나타나는 커다랗고 시커먼 털숭숭이. 냐무냐무? 냠냠? 냐암냠 냠냠 우릴 먹겠다는 말이야? 마시멜롱들은 힘을 합쳐 털숭숭이를 공격해보지만, 번번이 실패! 그때 한 마시멜롱이 살며시 나선다. "저기요... 정말 털숭숭이가 우리를 냠냠 먹으려는 걸까요? 털숭숭이는 아무 짓도 않았는데요."

    <팥빙수의 전설>에서 우리 옛이야기를 새롭게 해석, 개성 넘치는 캐릭터와 유쾌한 이야기로 선보여 큰 호응을 받았던 이지은 작가의 신작. 이번 작품의 캐릭터는 ‘마시멜롱’과 ‘털숭숭이’다. 하얗고 작고 매끈하고 여럿이 모여 사는 마시멜롱, 시커멓고 크고 털이 수북하고 홀로 등장한 털숭숭이. 너무나 다른 두 존재가 만나 일어나는 에피소드를 따라가다보면, 깜짝 놀랄 반전과 긴 여운이 남는다. 이지은 작가는 우리가 조금 다른 존재에 대해 가지는 선입견과 서로에 대한 오해가 생겨나고 풀리는 과정을 다정하고 즐겁게 그려냈다. 폭소를 터뜨리며, 나도 같이 '이파라파냐무냐무' 흥얼거리며 다시 앞으로 돌려보게 되는 마법 같은 그림책.

  • 늘 그랬듯이 길을 찾아낼 것이다
    권김현영 (지은이) | 휴머니스트 | 2020년 6월 "우리가 넘고 있는 시대"

    며칠 전 유튜브의 알 수 없는 알고리즘이 예전 남 아이돌의 뮤직비디오를 추천했다. 한창 인기 있었던 그 노래의 가사는 여성의 신체 부위에 점수를 매기는 내용이었고, 뮤직비디오 영상엔 이런 댓글이 달려 있었다. "지금 나왔으면 가수 작곡가 소속사사장 모두 대국민사과". 몇 년 새, 대중의 성인지 감수성은 '비약적'이라고 표현할 만큼 빠르게 발전했다. 강남역 살인사건 이후 미투, 버닝썬, N번방 등 일련의 사건들을 거치며 페미니즘은 시대정신이 됐다. 이제 분노를 참지 않는 여성들은 여성에게 씌워지는 가짜 금기를 깨부수고 기성 사회가 가려온 진짜 구조의 문제를 고발한다.

    다만 폭발하듯 다가온 변화는 여러 혼란도 가져왔다. 여성 내부와 외부의 속도 차이로 인해 생기는 좌절들, 여성 내부의 가치관 차이로 인해 발생하는 갈등들. 변화의 에너지가 큰 만큼 혼란의 크기도 크다. 다음 장으로 넘어가기 위한 필연적 성장통이겠지만, 어지러움 속에서 방향을 잃지 않기 위해 우리가 지금 서 있는 곳을 정확하게 인지할 때인 것 같다. 여성주의 연구활동가 권김현영은 이 책에서 우리가 어떤 길을 따라왔는지 세밀한 진단을 내린다. 전작 <다시는 그전으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가 짧고 명쾌한 글의 모음이었다면 그간 한국의 굵직한 여성 이슈들을 다룬 이번 책의 글들은 한 편당 분량이 길다. 길이가 긴 만큼 각 주제에서는 단편적인 사건뿐 아니라 그 사건이 놓인 맥락과 배경을 자세히 훑는다. 이런 서술 방식은 한국 사회 여성 운동의 흐름을 큰 그림으로 보게 한다. 사건의 의미를 재정의하고, 숨은 뜻을 찾고, 기존의 통념을 전복하며 하나하나 꼼꼼히 매만진 그의 이번 책은 혼란 속에서 길을 찾고 싶어 하는 이들에게 나침반이 될 것이다.

6.122020
  • 돈의 속성
    김승호 (지은이) | 스노우폭스북스 | 2020년 6월 "내 안의 부를 경영하라!"

    가난한 이민 가장에서 글로벌 외식 기업의 회장이 되기까지, 저자 김승호를 만든 성공 비결과 그 비하인드 스토리에 많은 독자들이 열광해 왔다. 이번 신작은 그 가운데서도 가장 핵심이라 할 수 있는 돈에 대한 경험과 관점을 집중적으로 다룬다. 그것이 거창한 철학도 아니요 돈을 벌기 위한 저술은 더더욱 아님을 강조하는 그는 돈을 대하는 평소의 습관과 돈 하면 떠오르는 이런저런 생각들을 차분하면서도 단호한 어조로 전한다. 저자의 진의를 가득 담은 75개의 글들은 짧고 간결하지만 울림은 깊고 여운은 길다. 부를 원하는 모두가 경청해야 할 기본 중의 기본임은 물론이다.

    김승호 회장은 재테크에 목마른 독자들을 위한 조언도 빼놓지 않는다. 빨리 돈을 버는 모든 일을 멀리하고, 시간으로 돈을 벌고 돈을 벌어 시간을 번다는 그의 투자 원칙들은 그 어떤 호령보다도 크게, 조급한 우리의 마음을 꾸짖는다. "돈은 인격체다." 어쩌면 이 책의 첫 문장 속에 모든 것이 함축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돈을 사람 대하듯 소중히 대하는 것이야말로 부를 향한 첫 번째 덕목이라는 것. 이제 우리의 평소 행실이 돈에 그대로 투영되어 각자의 부를 결정짓는다는 사실을 명심하자. 돈 버는 법을 애써 다른 곳에서 찾을 필요도 없다. 답은 우리 안에 있으니까.

  • 화이트 호스
    강화길 (지은이) | 문학동네 | 2020년 6월 "2020 젊은작가상 대상, 강화길 소설집"

    강화길의 여성들. 그들은 감지하는 사람들이다. 어쩐지 먼저 알아채는 사람들, 스산한 기척에 뒤돌아보는 사람들. 그들이 사는 세계에는 때론 '고딕/미스터리'로 표현할 만한 어떤 징조가 존재하기도 하고 (<손>, <화이트 호스>) 때론 평범한 시댁, 화려한 저택으로 표현되듯 징조랄 게 없이 '평범'하기도 하지만 (<음복>, <오물자의 출현>) 이 촘촘하게 짜인 이야기는 공통적으로 '전율'을 선사한다. 전율, 긴장감, 다시 말해 스릴. 그런 의미에서 강화길의 소설은 '스릴러'라고 표현해도 손색이 없을 것이다. 편혜영의 말대로 '어째서 누군가에겐 두렵고 누군가에겐 그렇지 않은가. 이 기울기와 낙차는 왜 여전한가.' 라고 질문하는 사람들의 이야기. 권여선은 "강화길은 이제 어디로 가려는가. 나는 조마조마한데, 이보다 더 두근거리는 기다림은 드물다는 걸 알고 있다."라고 강화길의 소설에 대해 말한다.

    한 가족을 둘러싼 은밀한 겹을 단 하룻밤의 제사로 알아채고 만 '세나'의 이야기로 2020년 젊은작가상 대상을 수상한 강화길이 수상작 <음복>이 수록된 소설집으로 독자를 만난다. "그래서 내가 이상하다고 말하면 그녀는 아니라고 하겠지. 이렇게 말하겠지. 너무 예민하신 것 같아요." (<화이트 호스> 중) 강화길의 소설이 다다른 곳은 거대한 구조 앞이다. 소문, 험담, 부당한 인식, 차라리 착각이었으면 싶은 순간들. '5학년 담임 김미영 미친년' (<손> 中)이라고 화장실 거울에 적힌 커다란 낙서 앞. 이런 악의가 사실인 것보다는 차라리 내가 너무 '예민'해서 잘못 본 게 낫지 않을까 고민하게 되는 순간. 이 예민한 사람들이, 알아챈 사람들이 바짝 긴장한 채로 어제와는 다른 세계를 어제와는 다른 눈으로 마주한다.

    표제작 <화이트 호스>는 테일러 스위프트의 노래를 인용하며 전개된다. "나는 네가 이끌어줄 사람이 아니야. 나는 공주가 아니고, 이건 동화도 아니란다. 나는 너의 화이트 호스가 필요 없단다." (<화이트 호스> 중) 2008년 이렇게 노래하던 소녀는 2009년 VMA에서 무대에 난입한 칸예 웨스트가 무례한 해프닝을 벌이는 동안 아무 것도 하지 못하고 무대에 서있었다. 그리고 2017년, 4년 전 레드 투어를 진행하며 당한 성추행 이후 오히려 자신을 고소한 가해자에게 단 1달러를 손해배상금으로 요구하는 소송을 진행했다. "나는 쓰고 싶은 이야기가 있었고, 내게 진실된 이야기였고, 그래서 썼다." 라고 말하는 소설 <화이트 호스>속 소설가처럼, 어떤 알아챈 여성들에겐 자신의 이야기가 필요하다. 그 이야기를 강화길이 쓴다. 2020년이라는 기념비적인 해에, 한국소설이 우리에게 선사하는 경험의 한 단면.

  • 마리 퀴리
    이렌 코엔-장카 (지은이), 클라우디아 팔마루치 (그림), 이세진 (옮긴이) | 그레이트BOOKS(그레이트북스) | 2020년 5월 "2020 볼로냐 라가치상 논픽션 부문 대상 수상작"

    예쁜 장화보다 아버지의 서재를 좋아했던 마리 퀴리는, 어린 시절 책을 통해 평생 가슴에 새길 가르침을 얻는다. 바로 '지식보다 풍요로운 것은 없다'는 깨달음이다. 세계 최초로 노벨상을 두 번 받은 과학자, 프랑스 대학 교수가 된 최초의 여성, 1차 세계 대전 100만 명이 넘는 환자의 목숨을 구한 사람이기 앞서 마리 퀴리는 배우는 것을 너무도 사랑했던 사람이다. 그래서 우리가 세상으로부터 무엇을 어떻게 배우고, 그것을 다른 사람들과 나눌 수 있는 지가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의 화두가 된다.

    여성에게 가해진 억압과 차별을 이겨내고, 세계 과학의 중심에서 인류를 구할 발명을 하기까지의 여정이 88컷의 환상적인 삽화와 함께 담겨 있다. 마리 퀴리의 자서전과 전기, 영화, 다큐 등 방대한 자료를 집요하게 파고들며 철저한 고증과 창조를 통해 위대한 과학자의 생애와 업적을 돌아본다. 2020년 볼로냐 라가치상 논픽션 부문 대상작으로 선정되며 '예술과 과학을 결합한 위대한 전기'라는 평가를 받았다.

  • 읽기만 하면 내 것이 되는 1페이지 한국사 365
    심용환 (지은이) | 비에이블 | 2020년 6월 "매일 커피 한 잔, 한국사 1페이지"

    또 구석기시대에 대한 지식만 늘어날 걱정은 없겠다. 다행이다. 이 책은 연대기 순이 아니다. 요일별로 역사 키워드가 하나씩, 그에 대한 설명 한 페이지씩 담았다. 역사를 공부해야겠다고 마음먹을 때 딸려오는 압박감과 부담은 내려놓아도 좋다. 매일 커피 한 잔 마시는 동안 가벼운 마음으로 한 페이지씩 훑어보자. 차례대로 읽어도 좋고 원하는 키워드만 골라 읽어도 좋다.

    가볍게 읽히지만 대충 만든 책은 아니다. 역사N교육연구소 소장인 심용환 교수가 전공자가 아닌 시민의 눈높이에 맞춰 충실히 쓰고 다듬었다. 한국사에 대한 관심과 기초 교양을 쌓는 마중물로 적절한 책이다.

6.162020
  • 역사의 끝까지
    루이스 세풀베다 (지은이), 엄지영 (옮긴이) | 열린책들 | 2020년 6월 "행동하는 지성, 루이스 세풀베다의 마지막 소설"

    칠레의 자유를 위해 무수한 혁명 전투에서 목숨을 걸고 싸웠던 저격수 후안 벨몬테. 이제 모든 것을 내려놓고 해변의 집에서 옛 동지와 함께 바다를 바라보며 살고 있다. 어떤 이상을 바랐던가. 독재 이후, 새로운 세계에서 “도덕이나 윤리 따윈 베를린 장벽과 함께 무너져 버렸”고, 지식인과 예술가가 모이던 주점 테이블에는 더이상 "사르트르나 프란츠 파농의 책"이 없다. “삶의 이유가 한 가지 있다면, 그건 돈밖에 없"는 세상이 되어버렸다.

    환멸에 빠지는 것조차 그에겐 사치였을까. '러시아 비밀 정보기관'이라는 과거의 그림자 하나가 벨몬테의 집을 불시에 찾아와 그가 거절할 수 없는 요구를 한다. 단지 조용히 여생을 보내고 싶다는 소박한 소망을 위해 벨몬테는 다시 한번 총을 쥐게 되고, 트로츠키 시절의 러시아와 피노체트 독재 치하의 칠레, 나치 독일에서부터 현재의 파타고니아에 이르기까지 묻힐 수 없는 과거의 그림자들이 다시 드리워온다.

    벨몬테는 작가 루이스 세풀베다의 분신과도 같다. 조국 칠레의 군부 독재에 맞서 싸우다 망명을 떠난 후 올해 4월 스페인 땅에서 서거한 세풀베다가 남긴 마지막 소설. 그 이름은 <역사의 끝까지>다. 소설 속에서 바다를, 먼 수평선을 보며 잃어버린 자신의 무언가를 찾고 있던 사람들의 모습이 마음에 남는다. 마지막까지 작가는 무너진 세계의 조각들을 회상하고 있었을까. 현대사의 아픔을 직시하는 일과 평생 이어온 환경 운동은 그의 문학 세계의 중심이었다. 진정한 자유를 위한 투쟁과 지구상의 모든 생물에 대한 존중을, 자연의 경이로움을 노래해온 이 시대의 거장에 애도와 경의를 보낸다.

  • 더 리치 THE RICH
    키스 캐머런 스미스 (지은이), 신솔잎 (옮긴이) | 비즈니스북스 | 2020년 6월 "오늘의 생각이 내일의 부를 만든다"

    '당신은 돈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가?' 책이 서두부터 던지는 질문에 독서를 잠시 멈추고 생각에 잠긴다. 그런데 돈에 대한 평소의 생각이 뇌리를 스치기 무섭게 한쪽에서 반대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돈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본다 한들 돈 한푼 생기더냐는 소리다. 실체가 없기 때문일까, 재테크 독자들이 열광하는 건 마인드서보다는 아무래도 실전 투자서 쪽이다. 그런데 이것만은 결국 사실인 것 같다. 가진 자의 여유로 들릴 수도 있지만 수많은 백만장자들이 그 사실을 앞다투어 증언한다. '돈'이 '생각'에서부터 비롯된다는 사실 말이다. 부와 성공의 진짜 비결을 찾아 2년 동안 전 세계 백만장자들을 직접 만난 저자가 얻은 결론 역시 '생각'이다. 그는 이 책에서 부자들에게서 얻은 깨달음을 10가지 부의 법칙으로 압축하여 전한다.

    저자는 특이하게도 중요도에 따라 열 번째 법칙부터 역순으로 소개하고 있다. 돈에 대한 생각을 물으며 시작한 이 책은 '나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라는 물음으로 끝나는데, 그것은 곧 부의 잠재력을 깨우는 궁극의 질문이기도 하다. 그렇게 마지막까지 오니 저자의 의도를 알 듯하지만 아무래도 첫 장의 메시지를 잊을 수가 없다. <돈의 속성>에서도 김승호 회장은 가장 빨리 부자가 되는 방법은 천천히 부자가 되는 것이라고 역설하지 않았나. 빨리 부자가 되려는 이유는 부가 상대적 개념이기 때문이다. 타인과의 비교는 자신을 초라하게만 만들 뿐이다. 대신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를 비교해 보는 것은 어떨까. '잠재력을 깨우는 질문'을 갖고 '길게 생각하고 미래를 설계'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경제적 자유를 향한 좋은 출발점이 될 것이다.

  • 정원을 가꿔요
    커스틴 브래들리 (지은이), 에이치 (그림), 이순영 (옮긴이), 박원순 (감수) | 북극곰 | 2020년 5월 "아이들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

    '당신이 어디에 살든 식물을 심고 가꿀 곳은 충분하다. - 드웰'
    나뭇잎은 초록빛으로 물들고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는 계절, 야외에서 또 실내에서 누구나 쉽게 자신만의 정원을 가꾸는 방법을 소개한다. 마당과 텃밭이 없어도 베란다, 거실, 창턱 등 실내에서 씨앗을 심고 꽃을 기르며 자연의 변화를 느낄 수 있도록 안내하는 책이다.

    우유갑을 재활용해 멋진 화분 만들기, 어디서든 꽃을 기를 수 있는 마법의 공 씨드볼 만들기, 플라스틱 병으로 바람개비 만들어 날씨 관찰하기, 곤충 호텔 만들기, 관찰 일기 쓰기 등 어린이도 쉽게 따라 할 수 있는 다양한 활동이 수록되어 있다. 상냥한 선생님이 직접 시범을 보여주는 것처럼 쉬운 설명에, 자연의 싱그러움을 한껏 담아낸 삽화가 눈을 즐겁게 한다. 자연을 가까이 느끼게 해주는 것, 생명을 돌보는 법을 알려주는 것이야말로 아이들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임을 이 아름다운 그림책을 통해 다시 한번 깨닫는다.

  • 태양계가 200쪽의 책이라면
    김항배 (지은이) | 세로북스 | 2020년 5월 "태양계를 감각하기"

    이글이글 불타는 태양이 여섯 쪽에 걸쳐 나온다. 그로부터 다섯 쪽 뒤에 지구가 검지 손톱만 한 크기로 등장한다. 지구에서 100쪽도 넘게 가면 탁구공 크기의 푸른 해왕성이 있다. 여정 중간중간 마치 인쇄가 잘못된 것처럼 까만 점들이 쏟아져 있는데, 소행성들이다.

    이 책은 태양계의 크기 비례와 거리 비례를 최대한으로 구현한다. 크기 축적은 10억 분의 1, 거리 축적은 1,000억 분의 1이다. 눈으로 보이니, 이해에 앞서 감각한다. 책의 물성을 영리하게 활용한 책이다. 이 책을 읽으며 그간 '수금지화목토천해'를 읊을 때 떠올리던 이미지가 왜곡되어 있었음을 깨달았다. 책을 다 읽은 지금은 완전히 다른 형태를 상상한다.

    태양부터 시작해 해왕성까지 가는 동안 우주의 빈 회색 공간엔 각 행성들의 소개와 운석, 탐사선 등 태양계 관련 지식들이 자리 잡고 있다. 마치 상냥한 가이드의 안내를 받으며 우주를 여행하는 것 같다. 정보를 얻기 위한 목적으로 읽기에도 좋지만 지구를 떠나 위로받고 싶은 독자에게도 추천한다. 현실로부터 멀어져 아득해지는 기분이 썩 좋다.

6.192020
  • 나의 글로 세상을 1밀리미터라도 바꿀 수 있다면
    메리 파이퍼 (지은이), 김정희 (옮긴이) | 티라미수 더북 | 2020년 6월 "글로 타인과 연결되는 일"

    "세상을 바꾼다"는 말, 언제부턴가 조금 쑥스럽다. 그간 축적된 경험으로 세상의 무지막지함과 나의 먼지 같은 질량을 알게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세상을 바꾸겠다며 의협심을 불태우는 후배를 보면 기특한 동시에 어쩐지 쓴웃음을 짓게 된다. 나이가 들수록 조금씩 흩어지는 희망을 느끼고 있었기에 70대의 심리치료사 메리 파이퍼가 뿜어내는, 더 나은 세상에 대한 강한 신념의 에너지에 조금 놀라버렸다.

    이 책은 글쓰기 책이지만 방점은 '나의 글'이 아니라 '세상을 바꿀 수 있다면'에 찍혀 있다. 저자는 서문에서 단호하게 "이 책은 글쓰기 방법에 관한 책이 아니다. 세상을 더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기 위한 글쓰기 방법을 알려주는 책이다. 너그러운 마음과 담대한 영혼을 가진 역량있는 작가들을 위한 책이다."라고 말한다.(이 책의 서문을 3번 읽었다. 읽을수록 멋진 글이다.) 서로를 타자화하며 점점 엉망이 되어가는 세계 속에서, 그는 세상을 낫게 만드는 힘이 '연결'에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타인과 다른 세계에 별개로 존재하지 않고 연결되어 있다고 믿는 것이 혁명의 단초라 여긴다. 연결의 가장 효과적인 방법으로 그는 글쓰기를 제안한다.

    서문의 문장을 "자, 이제 온 힘을 다해 시작할 준비가 됐는지."로 마친 그는 책의 내용이 전개되는 내내 혼신의 힘을 다해 우리의 글쓰기를 돕는다. 우리가 자신의 고유한 글을 어떻게 발견할 수 있을지, 왜 '일단' 시작해야 하는지, 주장과 은유를 어떻게 활용하면 되는지. 그는 자신의 경험, 가족의 이야기, 심리치료사로서 할 수 있는 조언 등 본인이 가진 수많은 자원을 활용해 오직 이 책을 읽는 독자가 '더 나은 세상을 만들 글쓰기'에 성공하도록 돕는다. 그 에너지에 덩달아 내가 할 수 있는 이야기의 힘을 생각하게 된다. 연결이 혁명의 시작이라는 그의 말을 따르자면, 이 책은 작은 혁명이다.

  • 달 너머로 달리는 말
    김훈 (지은이) | 파람북 | 2020년 6월 "문명과 야만을 달리는 김훈의 문장"

    초한지가 기록하는 항우의 최후의 장면, 그는 자신의 말 오추와 함께 강 앞에 무릎을 꿇었다. 본래 용이었다는 말은 주인을 잃고 강에 뛰어들었다. 이성과 합리의 눈으로는 다가갈 수 없는 이야기의 세계. 이야기에는 있지 않은 것을 믿게 하는 힘이 있다. 소설가 김훈이 인간이 말(馬) 등에 처음 올라탄 무렵, 시원(始原)의 시대를 향해 연필을 든다. 결코 하나로 묶일 수 없는 두 나라, 유목을 하는 초(草)와 농경을 하는 단(旦)의 물러설 수 없는 전쟁의 풍경. 전쟁터엔 항상 말이 있고, 말은 자신의 이유를 알지 못한 채 태어나고 죽어간다. "어미의 몸 밖으로 나오는 순간, 야백은 네 다리로 섰다. 네 다리가 땅을 디딜 때, 야백은 그 다리에 와 닿는 느낌으로 땅의 든든함을 알았다." 흰 점이 있어 야백(夜白)이라는 이름이 붙은 말의 이야기다.

    김훈 장편소설. <칼의 노래>의 시대 임진왜란과 <남한산성>의 시대 병자호란의 참혹함을 보던 그의 시선이 먼 곳을 향한다. "나는 초원과 산맥에서 흩어진 이야기의 조각들을 짜 맞추었다." 김훈은 말한다. 삶과 죽음을 바라보는 가차없는 문장에선 온기 대신 비릿함이 느껴진다. 그 비정함이 마주하는 것은 어찌할 수 없는, 합리 따위를 찾아다니는 생명체의 노고를 막고 선, 벽처럼 단단한 '운명'이다. 초와 단의 장수를 태우고 전장을 누비던 신월마(新月馬) 혈통의 토하(吐霞)와 비혈마(飛血馬) 혈통의 야백(夜白)이 필멸의 전쟁의 풍경에서 조우하기까지. 말은 그저 이유를 모르고 달릴 뿐이다. 문명과 야만이 할퀴고 지나간 폐허를 무연히 바라본다.

  • 슈퍼 토끼
    유설화 (지은이) | 책읽는곰 | 2020년 6월 "<슈퍼 거북>의 토끼는 어떻게 됐어요?"

    토끼와의 경주에서 이겨버린 거북이 꾸물이를 통해 '나답게 산다는 것'에 대해 이야기했던 유설화 작가의 신작. <슈퍼 거북>의 또 다른 주인공 토끼 재빨라의 이야기다. 꿈에도 생각지 못하던 패배 이후, 재빨라는 경기 결과를 순순히 받아들일 수가 없다. 경주에서 지게 된 이유를 백 가지도 더 말할 수 있는데, 아무도 내 말은 들어주지 않고 모두의 관심은 '슈퍼 거북'에게만 쏠려 있다. 급기야 달리기의 '달'자만 들려와도 귀가 쫑긋 서고, 남들의 말과 시선에 신경 쓰느라 지쳐 가던 재빨라는 아예 달리기를 그만두기로 한다. '피나는' 훈련 끝에 어떤 일이 있어도 절대 뛰지 않는 토끼로 거듭난 재빨라, 이제 재빨라는 괜찮아졌을까...?

    유설화 작가는 우리가 흔히 겪는 실패나 실수에 대처하는 모습을 '경주에 진 토끼' 이야기를 통해 보여준다. 실패 이후 부정하고, 분노하고, 체념하고, 예민하게 굴다가 회피하기까지의 모습, 마침내 주변의 시선과 움츠린 자신의 마음을 극복하고 좋아하는 일을 하는 즐거움을 되찾기까지의 과정을 세심한 묘사와 특유의 유머로 표현했다. 깔깔거리며 재빨라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누군가 '괜찮아, 괜찮아' 하며 내 어깨를 다독여주고 있는 느낌이다.

  • 5년 후 나는 어디에 있을 것인가
    이용덕 (지은이) | 토네이도 | 2020년 6월 "미래는 꿈꾸는 자들의 것!"

    직장인들은 꿈을 생각할 여유가 없다. 꿈이 있다 한들, 그 꿈이 사장이 아닌 이상 그것은 직장을 나와야만 실현 가능한 것으로 여겨지기 일쑤다. 직장을 다니며 '현실의 삶'과 '미래의 나'를 동시에 챙기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모든 직장생활의 종착지는 결국 백수라는 직장인 최대의 명제 앞에 우리는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는 걸까. 글로벌 기업의 한국 지사 CEO로 근무하며 많은 인재들의 성공과 실패를 지켜봐 온 저자는 묻는다. 미래의 나의 경쟁력은 무엇인지, 도대체 꿈은 있기나 한지를 말이다. 저자는 자신이 '돈도 빽도 없는 대한민국 월급쟁이'라 생각한다면 하루 빨리 미래를 준비해야 한다고 힘주어 말한다. 요컨대 주어진 상황을 직시하고 정신차리자는 말이다.

    시간이 없으면 시간을 두고서라도 미래의 일을 찾아보아야 한다. 우리 인생은 장기전이기 때문이다. 앞서 소개한 <더 리치>에서도 '길게 생각하고 미래를 설계하라'고 하지 않았나. 저자 역시 인생의 장기 플랜을 점검할 것을 주문한다. 그는 다양한 에피소드를 통해 우리 직장인들의 꿈을 응원하고 그 실현을 독려한다. 혹여 '5년 후'가 너무 먼 미래라 생각된다면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져보자. 5년 전에 나는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 지나온 세월의 무상함이 느껴지는가. 아마도 세월은 더욱 빨라질 테고 세상은 그보다도 더 빠르게 변화할 것이다. 시간이 해결해 주는 것은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자. 또 다시 5년을 허송세월로 보낼지 말지, 우리의 결단만이 남았다.

6.232020
  • 나는 말하듯이 쓴다
    강원국 (지은이) | 위즈덤하우스 | 2020년 6월 "강원국의 말하기와 글쓰기"

    우리 모두가 작가가 될 필요는 없지만 누구든 더 나은 소통을 위한 노력은 필요하다. 단순한 말이라도 상대에게 100% 온전하게 전달되기 어렵기에, 정확한 소통을 위해서는 연구와 연습만이 살 길이다.

    그간 글쓰기에 대해 말해온 강원국이 이번 책에서 글쓰는 법에 더해 말하는 법까지 함께 설명한다. 대통령의 연설문을 써온 그에게 말하기와 글쓰기는 별개의 일이 아니다. 그가 알려주는, 말하듯 글 쓰고 글 쓰듯 말하는 방법은 상호보완하며 함께 나아간다. 현실적이고 실용적인 글쓰기 책이다.

  • 유원 (양장)
    백온유 (지은이) | 창비 | 2020년 6월 "<아몬드>, <페인트> 올해는 <유원>"

    사람들은 모두 유원을 알고 있다. 은정동 화재사건에서 살아남은 '이불 아기'. 교회에서도, 학교에서도 바르고 착한 아이로 유명했던 언니 예정. 예정의 상장과 예정이 쓴 소설 뭉치에 옮겨 붙은 담뱃불이 집안 모두를 태워버리던 그 순간, 예정은 놀라운 판단력으로 동생인 유원을 젖은 이불로 감싸 11층 아래로 던졌다. 그리고 떨어지는 유원을 받아내며 다리뼈가 으스러진 '의인' 아저씨는 그 이후 삶이 망가졌다. 유원은 다른 사람의 목숨과 삶을 희생한 덕분에 스스로가 살아있다고 생각한다. 자신을 대견해하는 사람들, 어렵게 살아난 것이니 바르게 자라야 한다고 쉽게 던지는 말. 매해 치르는 언니의 추도예배에서 언니의 친구 신아 언니는 자라는 유원의 모습에서 이미 죽은 예전의 예정을 본다. 사람들은 유원이 행복하길 바란다면서도, 유원이 웃으면 어떻게 그런 일을 겪고도 웃을 수 있냐고 유원을 이상하게 본다. 사고는 십이 년 전에 벌어졌지만, 유원은 아직 그 안에서 산다. 비틀린 마음, 자기 혐오, 죄책감, 연민. 유원의 서술로 진행되는 이 소설은 유원의 감정에 절로 몰입할 수밖에 없게 만든다. 이 모든 마음이 물감처럼 사납게 섞여 금방이라도 터질 것처럼 가득 차 있는 상태, 우리는 이런 나이를 알고 있다. 열여덟.

    '나는 어쩌면 고소공포증을 느끼기에 타당한 사람. 마땅히 죄책감을 느껴야 하는 사람.' 이라고 생각하던 유원은 높은 곳에서 친구 수현을 처음 알아챈다. 마스터 키로 학교 옥상부터 낡은 아파트 옥상까지 닫힌 문을 따고 다니는 조금 이상한 아이. 그 아이와 햄버거를 먹고, 노을과 불꽃놀이를 보면서, 자꾸만 사나워지고 쫓기는 마음을 추스르며 유원은 비로소 수현과 '함께' 하늘을 보고 선다. <완득이>를 시작으로 <아몬드>, <페인트> 등의 작품을 통해 가치있는 이야기를 품은 작가를 독자에게 소개해온 창비 청소년문학상이 백온유를 소개한다. 성장과 회복을 사려 깊게 고민하는 이 작가의 섬세한 문장이 지닌 가치를 깊게 생각해본다. 윤가은, 정혜신, 이슬아가 추천했다.

  • 칼 라르손, 오늘도 행복을 그리는 이유
    이소영 (지은이)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0년 6월 "이케아의 디자인은 이 화가에게서 시작된다"

    대부분의 평범한 우리들, 바쁘게 걷고, 바쁘게 일하는 우리들도 북유럽적인 삶의 리듬을 꿈꾼다. '휘게'라고 표현되는 너그러운 삶. 좀처럼 서두르지 않는 태도. 나른한 오후, 따뜻하고 정감 어린 집에서 뛰노는 어린이들의 웃음소리와 푸른 정원의 테이블 위에 놓인 책. 스웨덴의 '국민화가' 칼 라르손은 이렇듯 행복한 정경을 화사한 색감으로 그려내 보인다. 그의 아내가 자신의 아버지에게서 선물받은 후 함께 가꾼 집 '릴라 히트나스'의 풍경. 그림을 그리지 않는 동안은 직접 목공을 하기도 했다는 칼은 아내 카린과 자신의 여덟 아이들을 위해 그림을 그리고 집을 꾸몄다. 칼 라르손의 그림 속에 등장하는 단정한 흰 벽과 단단하게 짜인 서랍장이 '이케아'의 디자인 철학의 시작점이라고 할 정도로, 그의 그림은 '스칸디나비아적인 행복'이 무엇인지 선명하게 보여준다.

    빈민가에서 불행하게 자란 칼은 그림을 통해 자신의 아버지와 화해했고, 그림을 통해 자신의 어린시절을 받아들였다. 40대에 들어서 당당한 모습으로 화구를 들고 선 자화상을 그릴 수 있을 정도로 성공한 화가가 된 칼 라르손은 '어린시절에 받은 고통이 얼마나 자신의 영혼을 지치게 했는지 알기에 부인과 아이들에게는 가난과 불행을 결코 물려주지 않으려고 노력했다.'(62쪽) 화사하게 볕이 쏟아지는 릴라 하트니스에서 과자통을 들고 선 딸 브리타의 익살스러운 표정 (<과자 통을 들고 있는 브리타>, 141쪽), 독서를 하며 깊은 생각에 잠긴 아들 에스뵈른의 사색을 방해하지 않는 사려 깊은 태도. (<필요한 독서>, 173쪽) 에서 칼 라르손의 행복이 시작되는 순간을 본다. "아이들은 늘 어른보다 현명한 법"이라며 있는 그대로 아이들을 존중하는 다정한 시선이 포착한 삶의 기쁨. <모지스 할머니, 평범한 삶의 행복을 그리다> 등의 작품을 통해 행복한 그림을 소개해온 '아트메신저' 이소영 신작. 알라딘 인스타그램 계정을 통해 ( https://www.instagram.com/p/CBxU6_LgnxZ/ ) 칼 라르손의 그림을 더 살펴볼 수 있다.

  • 까면서 보는 해부학 만화
    압듈라 (지은이), 신동선 (감수) | 한빛비즈 | 2020년 6월 "알기 싫어도 머리에 박히는 해부학 지식"

    이 책의 목적은 드립일까, 해부학 지식의 전달일까. 해부학 지식을 잘 전달하기 위한 방법으로 웃음을 선택한 것인 줄 알았는데 읽다 보니 그 반대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쏟아지는 밈과 패러디에 흥미롭게 빠지다 보니 어느새 '호시탐탐 파트라슈'를 외우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손목뼈 암기법, 70쪽 참조).

    드립이 강하니 내용의 퀄리티가 떨어질 것이라는 의심은 거두자. 저자 압듈라는 어릴 적부터 아팠던 몸으로 인해 각종 해부학 서적을 독파하고 운동사 자격증과 체대 졸업장까지 지닌 무림 고수다. 명석하게 쓰인 이 책을, 이정모 국립과천과학관장이 추천했다.

6.262020
  • 말하기를 말하기
    김하나 (지은이) | 콜라주 | 2020년 6월 "<힘 빼기의 기술> 김하나, 말하기의 기술"

    읽고 쓰고 듣고 말하는 사람, 김하나. 카피라이터로 활동했고, <힘 빼기의 기술>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농담>을 펴냈으며, 팟캐스트 진행자로 활약 중이다. 북콘서트, 강연, 공개방송 등 말하는 일이 점차 많아진 그가 이번에는 말하기를 중심으로 말하고 듣는 일에 관한 유용하고 유연한 이야기들을 두루두루 들려준다.

    '말하기의 기술'이라 하여 A부터 Z까지의 기술적 해결책을 제시하지는 않는다. 카피라이터로서, 작가로서, 팟캐스트 진행자로서 경험한 많은 것들을 그러모아 일상의 이야기와 함께 풀어낸다. 김하나 작가의 글은 쉽고 명료하다. 이 책에서도 그 장점을 잘 살렸다. 그리고, 말하는 사람으로서의 자세, 마음가짐, 다년간의 말하기 경험을 통해 터득한 노하우를 편안한 문체로 전달한다.

    작지만 단단한 이 한 권의 책이 독자들에게 건네는 메시지는 용기를 내어 각자의 자리에서 다양한 목소리를 내보자는 것이다. 내향적인 아이가 수많은 청중 앞에서 제대로 목소리를 내는 어른이 된 것처럼. 말하기로 조금씩 확장해나간 세계와, 그 세계 안에서 만난 특별한 경험에 관한 의미 있는 기록을 독자들에게 기쁜 마음으로 권한다.

  • 색이 변하는 아이가 있었다
    김영경 (지은이) | 노란상상 | 2020년 6월 "볼 수 없지만 느낄 수 있는 마음의 빛깔"

    100명의 독자가 이 그림책을 읽는다면 100가지 감상이 나올 것이다. 그 어떤 독후감도 같은 내용일 수 없다. 누군가를 순수하게 좋아하고, 사랑하는 대상과 닮아갔던 지극히 개인적 경험을 불러내기 때문이다. 어느 날 불쑥 나타나 내 마음을 흔들어 놓은 것, 조용히 다가와 나를 다른 세계로 데려간 사람. 평생 이어지는 운명 또는 스쳐 지나간 짧은 인연을 통해, 자신에 대해 알아가고 스스로를 사랑하게 된 마법 같은 순간들을 말이다.

    수족관에서 은빛 물고기를 보았을 때, 노란 고양이를 품에 안을 때, 풀밭에 누워 깊고 푸른 하늘을 올려다본 어느 날, 파란 머리 색을 가진 다정한 소년과 함께 숲 속을 거닐던 순간에, 소녀의 색이 변한다. 어떤 존재를 사랑하게 될 때마다 우리 안으로 스며드는 새로운 공기와 빛깔의 작용이다. 소녀의 마음을 물들이는 아름다운 색과 담백한 문장들은 내 안에 차곡차곡 쌓여 지금 나를 이루고 있는 것들을 차분히 긍정하게 만든다.

  • 당신은 언제 노래가 되지
    허연 (지은이) | 문학과지성사 | 2020년 6월 "나쁜 소년이 서 있던 자리에서 노래가 되어"

    한때 그의 시는 불온한 검은 피였고, 나쁜 소년이 선 자리에 남은 무엇이었다. 시인이 된 후 30년이 지났다. 한 권의 시집만 남기고 오래 자취를 감췄던 전설 속의 시인의 시간도 한참, 이제 이 자리에서 시인 허연이 자신의 노래의 현재를 바라본다. 박형준과 나눈 대화가 담긴 발문에서 그는 이번 시집을 이렇게 말한다. '이번 시집은 시는 내가 만든 게 아니라 세상에 그냥 있었던 거구나 하는 인정......' 어떤 시절엔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들이 받아들여지는 순간을, 허연의 다섯 번째 시집이 말한다.

    "말해줘 가능하다면 내가 세상을 고르고 싶어" (<트램펄린>) 라고 말하던 시기가 있었다. 이제는 세상이 나를 떨어트리는 이유가 내가 미워서가 아닌 '그냥'이라는 사실을 안다. 트렘펄린이 나를 미워할 만큼도 내게 큰 의미부여를 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까지의 시간. 허연의 시는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폐수에 빠진 새를 건져낸 날' 받은 부고를 기억하고, (<경원선 부고>) '강물이 나에게 어떤 일을 한다는 것 / 한 번도 서럽지 않다는 것'(<강물에만 눈물이 난다>)을 직시한다. "어떻게 잊을 수 있는 거지 장대비를 피하던 낡은 집들을 항구에 피신했던 목선들을......" (<기적은 나도 모르는 곳에서 바쁘고>) 그러나 우리는 어떤 것을 잊고, 그러면서도 머문 그 자리에 계속 머물러 있다. 바로 그곳을 흐르는 이 노래. "이제는 미칠 일 하나로 바다에 다 와 가는 소리 죽은 가을 강을 처음 보것네." (박재삼, <울음이 타는 가을 강>)라고 노래했던 어느 시인의 아름다운 노래처럼, 우리의 현재, 이 모든 지리멸렬함도 언젠가는 틀림없이, 과거형의 문장으로 묘사되는, 노래가 될 것이다.

  • 처음 읽는 그리스 로마 신화 1
    최설희 (지은이), 한현동 (그림), 정수영 (구성) | 미래엔아이세움 | 2020년 5월 "초등학생 그리스 로마 신화 입문"

    첫 만남, 첫인상은 너무나 중요하기 때문에. 서양 문화를 이해하는 데 꼭 필요한 고전, 그리스 로마 신화의 세계로 떠나는 아이들의 첫 여행에도 유능한 안내자가 필요하다. 아무것도 없던 카오스에서 대지와 하늘 바다가 만들어진 이야기부터 올림포스의 신들의 기나긴 전쟁, 인간 세상과 자연을 다스렸던 신들의 특징까지 누구라도 홀딱 반할만큼 재미있게 쓴 고전 길잡이다.

    술술 읽히는 문장과 코믹하고 역동적인 그림, 인문학 소양을 쌓아줄 짜임새 있는 심화 페이지까지, 학습만화 장르의 장점을 극대화시킨 구성이 쉽고 빠른 이해를 돕는다. 예술과 철학, 역사를 비롯해 오늘날 우리 삶 곳곳에 영향을 끼치는 그리스 로마 신화. 처음 접하는 아이들의 입문서로 후회 없는 선택이 될 것이다.

6.302020
  • 책 먹는 여우의 여행일기
    프란치스카 비어만 (지은이), 송순섭 (옮긴이) | 주니어김영사 | 2020년 6월 "나만의 이야기 주머니 만들기"

    책을 읽기도 하고 냠냠 먹기도 하는 여우 아저씨가 워크북을 가지고 돌아왔다. 자신의 글쓰기 비법을 아낌 없이 공개한다니 이 특별한 기회를 놓칠 수 없겠다. 책 먹는 여우의 주문을 따라 상상을 글로 적고, 상상한 대로 그림도 그려보자. 오늘을 색깔로 표현하기, 시간대별 기분 그래프 그리기, 내 이름 바꿔보기, 스톱워치를 1분 30초에 맞추어 놓고 떠오르는 대로 아무거나 써보기 등 글쓰기인지 놀이인지 분간 안 가는 재미있는 활동들로 가득하다.

    꼭 여행을 가서 쓰는 일기로 국한시킬 필요는 없다. 상상 속으로 여행을 떠날 수 있는 어린이라면 언제 어디서든 이 책을 펼쳐도 무방하다. 눈 앞에 보이는 것, 상상한 것, 내가 좋아하는 것, 그리고 이루고 싶은 꿈들을 기록하는 것은 결국 나에 대해 조금씩 알아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바로 지금 이 순간의 감정과 생각을 담은 나만의 책, 세상에 하나뿐인 책을 완성해보자. 좋은 질문이 좋은 대답을 이끌어내고, 즐거운 글감이 행복한 글쓰기로 이어진다.

  • 내가 너의 첫문장이었을 때
    김민섭, 김혼비, 남궁인, 문보영, 오은, 이은정, 정지우 (지은이), 북크루 (기획) | 웅진지식하우스 | 2020년 7월 "언젠가, 삶에서 길어 올린 첫문장"

    김민섭, 김혼비, 남궁인, 문보영, 오은, 이은정, 정지우. 일곱 명의 작가를 한자리에서 만나볼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시선을 끄는 연작 에세이집 <내가 너의 첫문장이었을 때>. 각 작가의 색깔이 뚜렷한 63편의 에세이를 담은 이 책은 작가 초대 플랫폼 '북크루'에서 제공한 에세이 새벽 배송 서비스 '책장위고양이'에서 시작되었다.

    새벽 6시마다 독자들의 메일함으로 전송된 에세이들은 삶에서 길어 올린 '언젠가'의 이야기들이다. 고양이, 작가, 친구, 방, 뿌팟퐁커리, 비, 결혼, 커피, 쓸데없는 것과 쓸 데 있는 것. 친근하면서도 언젠가 한 번쯤은 경험해봤을 삶의 키워드들에 대해 일곱 명의 작가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다른 삶의 이야기를 자유로이 풀어낸다. 자유롭고 제각각이어서 더 끌리고, 다양한 글맛 덕분에 즐거움이 배가된다. 읽는 동안만큼은 일곱 명의 작가와 함께하니 지루할 틈 전혀 없이 따뜻하고 충만한 시간이 된다.

  • 전쟁의 미래
    로렌스 프리드먼 (지은이), 조행복 (옮긴이) | 비즈니스북스 | 2020년 7월 "오지 않아야 할 미래를 상상하다"

    한국전쟁 발발 70주년, 이 둘로 나뉜 한반도에서 우리는 그 어떤 민족보다 전쟁의 깊은 상처 속에서 살고 있지만 전쟁의 본질에 대해 깊게 생각해 볼 겨를이 없었던 것도 사실이다. 때로 긴장이 고조되기도 하지만 그저 사태가 파국으로 치닫지 않기를, 지도자들의 결정적 오판이 없기를 바랄 수밖에 없는 처지다. 우리는 결코 다가올 전쟁을 예측할 수 없다. 전쟁연구학의 세계적 권위자, 킹스칼리지 런던의 명예교수 로렌스 프리드먼은 그러한 숙명론을 경계한다.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사람들이 모여 만드는 것이 바로 역사라는 것이다. 그는 사람들이 미래의 전쟁을 어떻게 상상했느냐에 따라 그 양상과 전개가 달라졌음을 강조하며 보다 적극적인 예측과 상상, 사유와 통찰이 필요함을 역설한다.

    과거 사람들이 전쟁을 어떻게 예측하고 상상해 왔는지를 아는 것은 그래서 더욱 의미 있는 일이다. 이 책에서 프리드먼은 19세기 중반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사람들이 '미래의 전쟁'에 관해 쓴 소설과 논평, 보고서 등 각종 문헌들을 종합적으로 다룬다. 이를 통해 어떻게 전쟁의 어리석음을 일깨우고 파국을 막으려 노력해 왔는지, 어떻게 전쟁의 공포를 경고하고 안전을 개선해 왔는지를 살펴볼 수 있다. 안타깝게도 책은 전쟁에도 미래가 있다는 결론에 이른다. 전쟁의 연속성은 현저하며 과거의 경향들이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 하지만 우리에겐 지속적인 감시와 경고를 통해 지도자들의 오판을 막아야 하는 중책이 있다. 우리의 탐구와 노력이 계속된다면 전쟁의 미래는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 우리가 불 속에서 잃어버린 것들
    마리아나 엔리케스 (지은이), 엄지영 (옮긴이) | 현대문학 | 2020년 6월 "아르헨티나 고딕 호러, 폭력과 혐오의 맨얼굴"

    부에노스아이레스 지하철에는 모두가 아는 '지하철 여인'이 있다. 몸 전체에 심한 화상을 입어 온통 녹아내리고 일그러진 모습. 그는 지하철 칸을 돌며 승객의 뺨에 입을 맞추고 돈을 구걸한다. 많은 이들은 비명을 지르거나 바로 열차에서 내려버린다. 그의 몸에 불을 지른 이는 남편이었다. 남편은 태연하게 아내가 자신의 몸에 불을 붙인 것이라고 둘러댔다. 대중의 반응은 "아랍이나 인도에서나 일어날 법한 일이 왜 아르헨티나에서 벌어지냐" 정도였다. 비슷한 사건이 연이어 벌어지자 스스로 분신 의식을 거행하는 여성들이 생기기 시작한다. 불에 타 괴물처럼 변하면 적어도 여성 인신매매는 없어지지 않겠냐는 자조와 함께.

    표제작 '우리가 불 속에서 잃어버린 것들'은 실제 아르헨티나에서 일어난 방화 살인 사건을 모티브로 하고 있다. 불가사의한 실종과 잔혹하게 난도질당한 시체, 마약에 중독된 아이들, 방치된 폐가… 현대 아르헨티나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 12편의 소설 속에는 작가가 마주한 아르헨티나의 어두운 이면이 있다. 국가가 자행한 폭력, 여성 혼자서는 밤 거리에 나설 수 없는 도시, 경찰에 신고해도 아무 소용 없는 사회, 일상에 녹아 있는 가난과 중독, 광기와 혐오는 소설의 원천이었다. 지옥 같은 일상에 미신과 주술 의식이 지배하는 남미 특유의 정서가 혼재되어 '라틴아메리카 고딕 호러'라는 독특한 분위기가 탄생했다.

    생존을 위협하는 폭력에 어떻게 우아하고 조용하게 대처할 수 있겠는가. 작가 마리아나 엔리케스는 "장르 또한 하나의 언어"라고 말하며 호러라는 장르로 폭력에 맞선다. 더욱 극단적이고 더욱 파국적인 방식으로 공포의 방향을 전복하면서, 그 악행이 한 인간의 세계를 얼마나 파괴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내가 어둡고 음울한 소설을 쓰는 이유는 세상에서 괴물들과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익히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며 "공포, 그것은 거의 대부분 역사적이고 사회적인 공포"라는 고백과 함께. 록산 게이가 "좋은 공포 이야기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예시하는 단편들"이라는 말과 함께, 패티 스미스가 “평범한 장소의 공포를 깊이 기록하는 소설”이라 추천사를 보내며 함께 읽은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