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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국내저자 >

이름:김명인

성별:남성

국적:아시아 > 대한민국

출생:1946년, 대한민국 경상북도 울진

직업:시인 대학교수

최근작
2023년 8월 <오늘은 진행이 빠르다>

길의 침묵

남들이 방법에 기댈 때 나는 내용에 기댄다. 내용이라니! 아직도 거쳐가야 할 여분의 굴곡이 있는가? 방법을 곧 규범의 현실이라고 바꾸어놓아도 나는 끝내 그 틀에 익숙해질 것 같지가 않다. 어쩌지 못하는 내향성이 끝없이 나를 안으로 움츠리게 한다. 진액이 다 빠져나간 술지게미의 일상을 나는 살고 있지만, 한 지친 모험이 무릅쓰고 가려고 하는 미지가 어디엔가 꼭 있을 것만 같다. 저버리지 않는 믿음의 눈물겨움에 실려 나는 지금 풍경의 풍파 위에 이렇게 떠 흔들린다.

꽃차례

수국 위에 내려앉은 보랏빛이 희뿌옇게 물러졌다. 어느새 가을이다. 2009년 가을

따뜻한 적막

시 쓰기는 내게 무엇인가. 그 갈등은 견딜 만한 값어치가 있는가. 나날이 시가 무화되어 가는 시대 앞에서, 내 서정은 무슨 굴곡으로 마음들의 구비에 사무치려 하는가. 어떤 위안도 거기 내재해 있지 않다고 해도, 나는 시를 통해서 가야 할 포구 어딘가 아득히 깜박거리는 불빛을 본다. 아직도 하릴없는 열정을 부풀리며 어떤 방황에로 이끌린다. 목측(目測) 저 너머, 마음의 세로(細路)를 따라가며 내 서정도 나날이 낡아갈 테지만, 끝끝내 그리워할 시가 있으므로 나는 길 위에선 결코 멈춰 서고 싶지 않은 시인이다.

바다의 아코디언

초봄 보리를 보면 겨울 속으로 트였던 희열의 길 환하다. 새 세상 활짝 열어젖히기 위해 잠시 엄동 아래로 돌아갔던 뿌리의 폭죽 모든 씨앗과 노래는 얼음 속에서도 함께 소용돌이친다.

소금바다로 가다

기실 묻혀진 일들을 애서 떠올려 기록으로 남긴다는 것은 나 자신이나 남들에게 무슨 흥밋거리겠는가. 그럼에도 나는 이 내밀한 고백을 감행해보려고 한다. 이미 내 것이 아니더라도 그것들이 빚어낸 내 시의 근언을 나도 되짚어보고 싶어졌기 때문이다. 시란 읽어내기에 따라 수많은 변장으로 나타나는 것이니, 내가 나의 시를 읽을 때에도 예외가 아닐 것이다. 그리하여 나는 내 시를 분장시키고 형성해온 그 반죽덩어리를 다시 한번 감촉해보려 한다. 타인에게 읽히지 않아도 될 나만의 은밀함을 새삼스럽게 드러내려는 이 일은 내가 나를 반추하는 짓이기도 하리라. 대중 앞에 속내를 들키는 부끄러움을 무릅쓸 만큼 나는 젊지도 않지만, 그럼에도 내 최초의 심상들을 만나보려는 바람으로 절실해져 있다.

오늘은 진행이 빠르다

지금은 경작의 애락哀樂을 내려놓아야 할 때! 비가 오지 않는다고 탄식하던 농사의 시절은 지났다. 2023년 여름

이 가지에서 저 그늘로

제 몸이 아니라며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앉는다. 서쪽은 없다고 나는 중얼거리지만 이 추궁 견뎌야만 그 땅에 내려선다고? 2018년 8월

저 등나무꽃 그늘 아래

새로운 천 년을 맞아 제가 쓰는 시라는 표현 양식이 어떤 변모를 겪게 될는지. 유럽의 경우처럼 근대의 서곡을 열어놓고 근대와 더불어 잦아들는지. 그렇더라도 시에 기대어야 하는 안타까움은 관객 이상으로 주체의 입장을 더욱 내밀하게 만듭니다. 정말이지, 시의 운명에 제가 의탁하고 있다면, 그것 또한 숙명인 까닭에 힘들게 지고 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스스로에게 못박는 다짐은, 멈추는 지점이 어디든 거기까지 함께 흘러가자는 것입니다.

파문

두어 달 嚴冬을 바닷가 시골집에서 야산의 고사목을 잘라 군불 지피며 갯바위에 올라 낚시나 하면서 살았다. 저녁 늦게까지 들리지 않던 파도 소리가 자정 넘겨 점차 스산해져가는 것을, 잠귀에 고여 오면 뒤척거려 쏟아버리곤 했다. 그러고 보니 오랫동안 그 비몽사몽간에 내 자각을 세워두었던 것 같다. 애써 의식하지 않았으므로 이 적요 길게 이어질 듯하다.

화엄에 오르다 외

아직 완성되지 않은 영혼의 지형도 이제 제게 주어지는 이 상은 이미 달성된 시인에게 주는 상이 아니라, 열심히 시를 쓰고자 애쓰는, 그러기에 그 노력을 격려하기 위한 상이라고 제 나름대로 규정하고 나니, 한결 홀가분해집니다. 그리고 책임 또한 무거워짐을 느낍니다. 스스로 바라건대 저는 완성보다는 과정에 치열했던 시인으로 기억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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